이진호 ( 李軫鎬, 창씨명 李家軫鎬, 1867∼1943 )
일제식민통치에 앞장 선 친일관료의 전형
1910년 경상북도 지사.
1924∼29년
조선총독부 학무국장
1934년 중추원 참의.
1943년 중추원 고문
'춘생문 사건' 발설과 친일파로의 변신
호를 성재(星齋)라 한 이진호는 1867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1882년 무과에 급제하였으나 무관직으로 나가지 않고 외아문에서 설치한 영어학교인 동문학교(同文學校)에 입학하여 영어를 수업하였다. 그후 이진호는 미국인 선교사 알렌(H. N. Allen) 박사가 조선 정부에 서양의학을 교육할 뜻을 밝혀 1886년 3월에 설립한 제중원 의학교에 입학하여 의학을 공부하였다. 의학교가 개설될 당시에 13명의 학생이 선발되었는데, 이진호는 영어를 공부하였으므로 발탁되어 의학 공부를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의학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았는지 방향을 바꾸어, 1888년 미국인 군사교관 다이(William Mcentyre Dye, 茶伊)를 초빙하여 조선 정부에서 설립한 육군 사관학교인 연무공원(鍊武公院)에 입학하여 군사훈련과 교육을 받았으며 교육과정 동안 우수한 성적을 받아 교관 다이의 신임을 얻었다(연무공원은 1894년에 폐교되었다). 연무공원을 졸업하자 1887년에 효력부위용양위좌부장(效力副尉龍양(馬+襄)衛左部將)에 임명되어 무관으로 진출하였다. 1894년 9월에 일본이 훈련·양성했던 교도중대의 초대 영관인 이두황*이 양주목사로 전출되자 그는 후임으로 임명되어 동학농민전쟁을 진압하는 데 출동하였다. 동학농민운동이 진압된 후 김홍집, 박영효*의 연립내각이 성립되자 그는 훈련대 제3대대장으로 임명되었다. 1895년 일본의 낭인과 군대에 의하여 명성황후가 시해당하는 가운데 새로 개편된 김홍집 내각은 을미개혁을 실시하여 군제를 개혁하였다. 그 결과 종래의 훈련대와 시위대가 합쳐져 중앙에는 친위대 2개 대대가, 지방에는 평양 및 전주에 진위대 1개 대대가 설치되는데, 이 때 이진호는 육군 참령인 친위대 제2대대장에 임명되었다. 1895년 11월 28일 연무공원 교관이었던 다이와 미국인 선교사 그리고 친미파 인사들이 고종을 궁궐 밖으로 모시고 현 친일정권을 무너뜨리고자 일으킨 '춘생문(春生門) 사건' 때였다. 구(舊)시위대 군인들이 안국동을 경유하여 건춘문(建春門)에 이르러 궁궐 안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삼청동으로 올라가 춘생문에 이르러 담을 넘어 입궐하려 했다. 사전에는 이진호가 문을 열어 주어 그들이 궁궐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로 다이와 이진호 사이에 협의가 이루어져 있었으나, 이진호가 변심하여 미리 군부대신 서리 어윤중(魚允中)에게 계획을 밀고한 것이었다. 그 결과 친위대 숙위병이 명렬히 반격을 가함으로써 '춘생문 사건'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 사건에서 이진호가 왜 변심을 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더구나 그는 다이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았던 터라 그 변심의 동기는 하나의 수수께끼로 남는다. 다만 한 가지 추론할 수 있다면, 전형적인 권력추구형 인물이었던 만큼 그는 그 나름대로 세상의 흐름을 타려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무튼 이 사건이 실패한 지 3개월이 지나지 않아 일어난 1896년 2월 11일의 아관파천으로 친일내각인 김홍집 내각이 붕괴되고 친러내각이 성립되자, 이진호는 '춘생문 사건' 당시의 친일 행동에 대한 보복이 두려워 일본군영으로 도피하였다가 11월에 유길준(兪吉濬), 우범선*, 이두황*, 이범래(李範來), 구연수(具然壽) 등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일본에 망명해 있는 동안 이진호는 유길준을 중심으로 한 일본 육사 출신 청년장교들과 함께 대한제국을 무너뜨리고 대한정부를 세운다는 쿠데타 계획에 참가하여 그 총지휘를 맡도록 약속하였으나 준비단계에서 무산되었다. 그가 10년간의 망명 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1907년 제2차 한일협약을 체결한 일제가 외교권을 박탈하고 구(舊)한국군을 해산했을 뿐 아니라 통감이 고급 관리 임용의 전결권을 갖게 되어 자신의 안녕이 보장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특사로 귀국하여 당시 통감부 체제였던 이완용 내각에서 일본 유학생 출신 및 일본 망명자들과 함께 관직에 등용되어 1907년 10월 중추원 부찬의로 임명되었고, 이어 평안남도 관찰사로 임명되었다. 그후에는 사립학교를 억압하고 식민지 교육을 행하고자 설립된 평양 고등보통학교에서 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1910년 '합방' 후 총독부 체제가 출범하면서는 10월에 경상북도 지사로 임명되었고 1916년에 전라북도 지사가 되었다.
어용단체 조직하여 민족운동 가로막아
3·1 운동이 전국 각지로 확산되고 독립을 주장하는 민족주의운동이 번성하자 일제는 친일 관료와 지주를 중심으로 '자제단'(自制團)이라는 어용단체를 조직하여 민족운동을 가로막는 선무공작을 꾀하였다. 이것은 '합방'을 전후한 시기에 일본군이 의병투쟁을 저지하기 위하여 불량배 6000명을 돈과 감언이설 그리고 협박으로 모집하여 '헌병보조원'으로 삼고는 그들을 시켜 촌락마다 자위조직을 강제로 만들게 하고 첩보와 의병토벌조직으로 이용했던 경험에서 짜낸 것이었다. 자제단은 대구, 청주, 안동, 청도, 평북 정주, 재령, 울산, 연백, 전주, 진주, 군산, 충남 연기, 수원, 전북 등지에서 총독부의 관권을 통하여 강제로 조직되었다. 당시 전라북도 지사로 있던 이진호는 이러한 계획에 동조하여 자신의 주도하에 '전북 자생단'을 3·1 운동이 진행되고 있을 무렵인 1919년 4월 21일에 조직하였다. 자제단 조직은 독립운동에 참가한 자를 검거하고 그들 내부로 들어가 첩보를 수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으며, 지주가 거느리고 있는 머슴이나 소작인을 자제단 조직 안으로 끌어들여 그들의 반일투쟁을 지주로 하여금 힘으로 눌러 막게 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었다. 자제단의 회원이 된 자들에게는 "불온행위를 감히 하는 자, 또는 불온자를 숙박케 한 자를 발견했을 때는 당장 본부장 및 지부장에게 밀고할 의무"가 있었다. 이진호는 사이토에게 보낸 보고서에서 자제단은 "민간유지자가 자발적으로 그 진정방법을 마련할 필요"에서 조직되어 "인민들이 서로 조심하도록 훈계해서 앞으로는 소요를 일으키는 일이 없고 또 유혹하는 자를 검거하는 데 편하도록 하기로 서약"하였다고 하였지만, 자제단 단원은 첩보, 밀고 등의 의무를 지켜야 한다는 서약서에 서명날인할 것을 강요당했기 때문에 관헌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거부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 이유는 당국이 조선인의 서명날인을 받아서 파리강화회의에 보내 조선인은 '합방'에 이의없이 복종한다는 의사표시의 증거로 쓰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 돌았기 때문이었다. 1921년 4월에 중추원 관제가 대규모로 개편되었다. 이 때 이진호는 자신의 충성에도 불구하고 중추원 참의 선발에서 탈락하자 총독부 당국에 불만을 품고 전라북도 지사를 사임하였다. 당시 미즈노(水野鍊太郞) 정무총감은 이진호가 불만을 품게 되면 민심을 위무하는 데 곤란한 문제가 발생한다며 유임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그의 결의가 움직이지 않자 일본인들이 독점하고 있는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유일한 조선인 이사로 앉혀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대한 조선인 농민들의 불평불만을 진무하는 데 이용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이진호는 8월에 동양척식주식회사 경성지점의 촉탁으로 입사하였다. 그리고 1921년 9월에 조선중앙위생회 위원에 임명되었고, 그 해 11월에는 총독부 고위 관료 등 재조선 일본인과 친일 거두들이 모여 조선구락부를 창설할 때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일본인 상류사회로 들어가 자적(自適)하였다.
조선인 최초의 총독부 학무국장
이진호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으로 1924년 12월 12일자로 조선총독부 학무국 국장에 임명되었는데, 조선인으로서 총독부 부서의 국장에 임명되는 일은 학무국이 유일하였으며 또한 조선인 학무국장으로 임명된 이는 이진호와 엄창섭(嚴昌燮:창씨명 武永憲樹) 두 사람뿐이었다. 그가 학무국장에 임명된 것도 3·1 운동 이후 조선인 본위의 교육을 실시할 것을 주장하는 요구가 계속 높아지자 총독부가 취한 조선인 무마·회유책의 일부였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일선융화, 일시동인(一視同仁), 내지연장주의(內地延長主義) 등의 슬로건을 내걸고 식민지통치에서 발생하는 민족간의 기본적 모순은 뒤로 하고 민족차별에 대한 불만에 초점을 맞춰 조선인을 무마하고자 했다. 즉, 교육령 개정이 계획되면서 총독부는 조선인 민간의 의견을 수렴한다는 제스처를 취하게 되는데, 이와 관련하여 당시 조선인들 사이에서 가장 중시된 요구는 보통학교 교과서에서 사용하는 용어와 교수 용어는 일본어 과목을 제외하고는 모두 조선어로 하고 조선인 교사가 가르치는 조선역사 및 지리 과목을 교과과정에 넣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선인의 이러한 요구는 무시되었다. 1922년 2월에 발포된 개정 교육령 어디에도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이에 조선 민중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총독부는 학무국장을 조선인으로 임명하여 마치 조선인을 위한 교육적 배려를 하는 것처럼 기만하고자 한 것이었다. 조선인으로서 총독부 학무국 국장으로 임명된 이진호는 일제의 의중을 읽어내고는 감지덕지하면서 더욱 '일본인'으로서의 충성을 다하리라고 다짐하였다. 그러나 조선인 학무국장이 탄생하자 세간의 한켠에는 그가 아무리 친일파라고는 하지만 일말이라도 민족적 성향이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갖는 조선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학무국장으로서의 이진호의 행적에서 그가 조선인들의 교육을 위해서 어떤 배려나 조처를 취했다는 기록은 전혀 찾을 길이 없다. 이진호는 취임에 앞선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조선인들의 당대 최고 관심사인, 보통학교 교수용어로 조선어를 사용하는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소위 방침에 관한 문제이므로 자신의 생각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는 발뺌'이 전부였으며, 당시 한창 진행중이던 민립대학 설립 문제에 대해서는 재정이 빈약하기 때문에 힘이 미칠 수 없을 것이라고 회의적인 자세를 보여 주는 등 조선인들의 기대와는 진작부터 어긋나고 있었다. 또한 학무국장 재임중에 자신의 아들을 조선인 고등보통학교보다 훨씬 시설이 좋은 일본인들이 다니는 공립 심상소학교에 입학시키고자 120원의 기부금을 경성부청에 기부하여 교육기본재산에 편입시켜 무리를 빚은 바도 있다. 한편 개량주의자들과 친일파들의 자치운동에 반대하고 절대 독립을 주장하는 비타협 민족운동가들과 사회주의자들의 항일민족운동이 성장하자 총독부는 식민지교육을 철저히 시행하기 위해서는 식민지 교육제도와 교과서를 새롭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절감하고 1928년에 임시교육심의위원회를 조직하는데, 이진호는 이 위원회의 위원으로 선정되어 식민지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교육제도연구에 참가하였다. 그리고 1929년 1월에 학무국장직에서 퇴임한 후 1934년 1월 중추원 참의에 임명되었다. 전쟁이 막바지에 오르고 있을 때 그는 각종 친일단체을 조직하고는 조선의 젊은이와 조선의 자원을 전쟁에 동원하는 선봉이 되어 적극 활동하였다. 즉, 1940년 10월 국민총력조선연맹 평의원, 1941년 8월 임전대책협의회 위원, 1941년 10월 조선임전보국단 고문으로 활약하였다. 그리고 작위를 받지 않은 사람으로는 유례 없이 1941년 중추원 부의장에까지 올랐고 1943년 10월에 중추원 고문으로 재임하였으며 귀족원 의원을 지냈다. 일제의 식민정책에 협력한 사람들의 약력을 정리한 {조선공로자명감}(1935)에서는 이진호를 "일찍부터 동양의 사정을 우려하여 일본에 의뢰해야 함을 꿰뚫어 보아 조선의 영원한 행복과 안녕을 위하여 분기한 사람"이라고 평하였는데 이는 그가 일제의 근대화 논리에 함몰되어 힘에 굴복함으로써 일제가 선전하는 대로 식민통치에 앞장 선 전형적인 친일파였음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 이명화(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원)
참고문헌
{現代史資料} 25, 朝鮮 (1).
{漢城週報}.
寺內正毅 관계문서 전북자성회취의서, 규약, 발기인 명부.
{齋藤實文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