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가 있는 우루무치
 

이글은 조선일보가 2000.11.9~12.27 8회에 걸쳐 연재한 "전설의 공간 실크로드"중 마지막 8회분이다. 천산산맥 동쪽 끝에 보그다이(Bogdai·박격달)산이 있고 그산기슭에 천지라는 호수가 있다는 것이다. 백두산과 천지를 닮고 산이름이 박달산과 흡사해 이곳이 바로 환인천제가 발원했던 곳이 아닌가 하는 놀라움과 호기심을 갖기에 충분했다. 사진과 글을 보는 순간 기자가 느꼈다던 기시감이 절로 느껴졌다.
                                          < 운영자 >

 

시골 역사처럼 허름한 카쉬가르 공항이 깜깜한 어둠에 잠겼을 때 우리는 우루무치를 향해 북동쪽으로 날아갔다. 서역과 작별했다. 여행의 끝이 대개 그러하듯, 감상적인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사람들은 아무 것도 뵈지 않는 창밖을 내려다보며 침묵에 잠겼다. 2시간 만에 침묵은 깨졌다. 비행기는 굉음과 함께 우루무치에 내려앉았다. 여명도 채 오지 않은 새벽이다. 우리는 녹초가 되어 호텔 방구석에 처박혀 깊은 잠에 빠졌다.

어김없이 아침이 와서, 사람들은 나들이옷으로 갈아입고 버스에 올랐다. “오늘은 보그다이(Bogdai·박격달)산 기슭에 있는 호수 천지로 가는 날.” 가이드 설명을 들으며 산 이름이 어디선가 낯이 익다는 생각을 했다. 간단한 시내 관광을 마치고 우리는 천산산맥 동쪽 끝 보그다이산으로 향했다.

‘드넓은 목장’이라는 지명 그대로, 우루무치 교외에는 고속도로가 광대한 초지를 가로질렀다. 말이 뛰놀았고 양떼가 거닐었다. 50분 만에 시공은 현대에서 ‘무릉도원’으로 급변했다. 사막에 익숙해 있던 우리들 눈앞에 오랜 만에 협곡과 상록수림이 나타났다. 아스팔트는 녹아내린 눈으로 검게 반짝였다.

절벽에 붉은 글씨로 ‘석관’이라 조각된 좁은 회랑을 지나자 멀리 구름 위로 산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개울에는 맑디 맑은 옥수가 넘쳐흘렀고 그 위로 물푸레나무와 버드나무 숲이 그늘을 드리웠다. 사내 하나가 숙련된 솜씨로 말을 몰고 버스를 스쳐갔다. 몽골족이었다. 맹렬하게 질주하는 버스를 사내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피해 사라졌다. 몽골족이 사는 천막집 파오 위로 뭉게뭉게 밥 짓는 연기가 솟았다.

기시감(旣視感  dé ja vu)이라는 말이 있다. 분명 처음 보는 장면, 처음 겪는 일, 처음 나누는 대화임에도 이전에 경험했던 것이라고 느껴지는 현상이다. 기시감은 대개 ‘착각’이라는 말로 얼버무려지지만 때로는 황당함, 때로는 소름 끼치는 경악스러움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휴게소에 잠시 머문 버스가 구절양장 산길을 올라 천지에 닿았을 때, 기시감이 나를 엄습했다. 도무지 낯설지가 않았던 것이다, 천지란!

미모와 절대권력과 초능력을 겸비한 중국 전설 속 여신 서왕모가 살던 곤륜산이 이곳이라 했다. 서왕모가 목욕했다는 작은 천지도 이곳에 있다. 달에 사는 두꺼비와 해에 사는 세 발 달린 까마귀 삼족오도 서왕모 설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연전 한국에서 열렸던 「아! 고구려」전에서 삼족오는 가장 인기를 모았던 스타 중의 스타 아닌가. 그 설화의 대모 서왕모가 숨어있는 천지였다. 호수를 둘러싼 연봉, 영지버섯을 들고 흥정을 붙이는 아낙들, 매서운 추위에 새빨간 볼을 매만지며 관광객 옷자락을 붙드는 아이, 그리고 “보그다이(‘박달’과 비슷하지 않은가)는 몽골말로 ‘영산’을 뜻한다”는 몽골족 가이드의 귀띔까지―. 백두산을 닮은, 천지를 닮은 자연 앞에서 가벼이 들리고 가벼이 보인 것 어느 하나 없었다.

옷깃을 파고 드는 바람 속에 뱃놀이는 30분 만에 끝났다. 하지만 호수가 던진 파문은 지금도 가슴 속에 물결친다. 만리장성 서쪽 끝에서 만났던 고구려 고분 수렵도와 동일한 구도, 동일한 기법의 수렵도가 천산산맥까지 따라와 다시 한번 나를 놀래키고 사라졌다. 삼족오는 지금 일본축구협회가 심벌마크로 사용할 만큼 아시아 대륙 동에서 서까지 두루 사랑받는 상징이요, 수렵도 역시 말 타는 민족이라면 어린아이조차 상상할 수 있는 ‘실경’일 뿐. 그래, 뿌리는 거기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 호수 전경 만큼이나 후련함을 안고 산을 내려왔다. 중간에 몽골족 파오에 들러 말젖으로 만든 차를 홀짝이며 몸을 데웠다. 따뜻했다.

밤이 왔다. 호텔 바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요염한 여인들이 어둠 속에서 이방 사내들에게 추파를 던지고 있었다. 아쉬움에, 포만감에 우리들은 맥주를 홀짝이다 자리를 옮겨 실크로드에서 담근 포도주를 더했다. 그리고 내일을 위해 작별. 10분 뒤 우리는 그 자리에 다시 모였다. 한국과 일본에서 날아와 맺은 5000㎞의 인연, 도저히 하룻밤 만으로는 석별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우루무치의 밤은 그렇게 새벽으로 갔고 우리는 못내 아쉬워하며 방으로 돌아갔다.

이튿날 아침 우리는 상해행 러시아제 일류신 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얼마 안 있어 아래에 새하얀 기련산맥이 스쳐갔다. 이어 고비사막이 나타났다. 저 뭍에서 마주쳤던 군상이 뇌리를 스쳤다. 이윽고 비행기는 상해에 착륙했고 상해에서도 많은 인연이 맺어져 지금도 이어지고 있지만, 훗날 다른 분들이 또 다른 인연을 엮어내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시라. 여기 비단길, 꿈길을 거닐던 사연을 맺는다.

               /글.사진=박종인 기자 (sen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