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의 진실 - 대방은 어디에 있었는 가 ?

  
▣ 대방은 요동군에서 분리되고 하북성 석문에 접하여 있었다 !        지명목록         홈   

< 대방의 위치도 >

▣ 대방의 중요성

고구려 수도가 국내성이고, 후한이 낙양에 있었을 때인 196 - 200년 사이에 공손강이 요동군의 일부를 대방군으로 하였다 (삼국지 권 30)
대방의 위치는 東夷國인 高句麗, 百濟, 신라 倭의 위치를 규명하여 주는 중요한 지명인데 요동군을 밝혀주는 요소도 된다.

대방의위치를 밝히지 않는 한 결코 동이위치는 밝혀지기 어려울 것이다. 다시말하면 대방의 위치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아는데 핵심적인 곳이다.

- 韓, 倭, 百濟 수도 낙랑군의 위치를 알수 있다.
- 300년대의 신라 위치를 알 수 있다.
- 요동군의 위치를 알수 있다.

▣ 대방의 위치에 대한 중국사서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1) 韓帶方之南 (삼국지권30) (韓은 帶方의 남쪽에 있다.)
(2) 倭人在帶方東南 (삼국지권30) (倭人은 대방의 동남에 있다)
倭人은 대방 남쪽, 회계, 담이(남월), 주애, 이주, 단주가 있는 곳에 있었다 (삼국지, 후한서, 남제서, 양사, 남사)
(3) 質桓之間復犯遼東西安平殺帶方令 (후한서권85) (질제와 환제 사이에 다시 요동 서안평을 침범하여 대방현령을 죽였다.)
(4) 桓靈之末韓濊彊盛郡縣不能制民多流入韓國建安中公孫康分屯有縣以南荒地爲帶方郡 (삼국지권30)
(환제와 영제의 말년에 한과 예가 강성해져서 그 군현을 제어할 수 없이되자 많은 백성들이 한국으로 도망해 들어 갔다.
건안시대에 공손강이 남쪽지방 거친땅을 쪼개서 대방군을 삼았다.)
(5) '남제서'에서 百濟는 요동에 廣陽, 朝鮮, 帶方, 廣陵, 淸河, 樂浪, 城陽등이 있다.
(北齊書에 城陽王 淸河王이 있는데 北齊는 550-577년까지 28년간 있었다.)
지금 하북성에 청하가 있으니 대방도 이 지역에 가까이 있어야 한다.

▣ 장안 중심의 중국기록을 종합하여 보면 대방은

① 강회의 북쪽에 있어야 하고
② 衛와 회계의 서북쪽에 있어야 하고
③ 遼의 동쪽이며 안평의 서쪽에 있어야 하고
④ 청하가 있는 지역이어야 한다.

▣ 결국 하북성 청하 안평의 서쪽이고 요의 동쪽인 태행산맥의 동쪽에 帶方이 있음이다. 한족들의 기록이 위와 같은데 우리의 기록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 '삼국사기'의 百濟本紀에 의한 帶方

① 溫祚王
溫祚王 동명의 후손으로 구이가 있어 어짐과 신의에 돈독하여는데 나라를 대방고지에 세웠다.
구이는 仇首王(214-233)과 古爾王(234-286)을 나타내고 있다.
② 286년 責稽王
고구려가 대방을 치니 대방이 구원을 청하므로 군사를 내어 구원하고 고구리가 원망하므로 침략을 염려하여 阿且城과 蛇城을 수리 하였다.
③ 蓋鹵王
帶方太守馬張茂(대방태수마장무)를 魏에 보냈다.蒸土築城(연와로 성을 쌓았다.) 緣河樹堰(하수=한수)를 따라
제방을 샇았는데 사성의 동에서 崇山까지 쌓았다.) 그리고 한성이 고구리군에 함락되고 阿且城아래에서 돌아가셨다.

472년에는 백제의 대방군이 있는데 한수, 하수, 숭산, 사성, 아차성, 하수의 제방, 벽돌의 성터가 있어야 대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 高句麗本紀에서 帶方

④ 太祖94년 한 요동의 西安平에 있으므로 쳐서 대방령을 죽이고 낙랑태수 처자를 사로 잡았다.
- 247년에 고구려가 평양성으로 옮겼다
- 265년에 위가 망하였다
- 315년 고구려가 대방군을 평정했다. (302 ~ 420년 까지 중국은 5호16국시대 였다)

▣ 열전 및 신라본기

⑤ 672년 김유신전에서 '당군은 말갈과 함께 석문의 들에다 진을 치고 법민왕은 장군 의복, 춘장 등을 보내어 대방의 들에다 진을 쳤다.
(唐軍與靺鞨營於石門之野王(법민)遣將軍義福春長等禦之營於帶方之野)
⑥ 300년 낙랑, 대방이 신라에 항복하였다

▣ 위의 삼국사기에서 대방관계를 종합하면

① 阿且城, 蛇城, 漢城, 河水, 崇山이 있어야 하고
② 遼의 동쪽이며 안평의 서쪽에 있어야 하고
③ 석문이 있어야 한다.


▣ 지금 河北省에는 안평, 석문이 있고 河南省에는 崇山이 있으며 그 사이를 흐르는 강이 河水 또는 漢水라 부르는 黃河가 있고
崇山의 북에서 하수를 따라 동으로 제방이 있다.
'삼국사기'의 내용도 한족의 사서와 비슷하지만 아주 정확한 기록이 있음이니 石門과 대방이 접하여 있음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 대방에 관하여 종합적으로 정리 하면

1. 會稽 이주 衛의 서북쪽에 있어야 하고
2. 江淮(양자강과 회수)의 북쪽에 있으며
3. 崇山 북쪽에서 동으로 흐르는 漢水 또는 河水의 북쪽에 있어야 하고
4. 淸河가 있는 곳에 있으며
5. 遼의 동쪽 즉 태행산맥의 동쪽에 있고 安平의 서쪽에 있어야 하는데
6. 석문과 帶方은 진을 치고 대적하고 있었으니 접하여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 東洋의 모든 사서에서 이보다 정확하게 대방을 밝힐 수는 없을 것이라 본다. 왜냐하면 漢族의 正史와 '三國史記'에서 밝혀졌기 때문이다.

대방은 태행산맥의 동쪽이며 안평의 서쪽 석문 유역으로 표기하든지 石門接帶方으로 하든지 하면 될 것이다.
石門의 바로 남쪽에는 贊皇(地名찬황;西安平)이 있고 石城이 있고 樂山이 있다.
또한 '삼국지'에서 대방군은 요동군에서 분리되었음을 분명히 하였다.

자 ! 이제 지도상에서 대방의 위치를 확인해보시고 이보다 더 나은 대방에 관련된 과학적인 자료가 나오길 고대합니다

< 대방의 위치도 >

이지도는 고지도인 "우적도" < 송나라(700~800전)때 만들어진 고지도로 대만 영인본 > 와 송본지리지장도, 중국군사지도를 추적하여 확인한 지명중 일부이다

▣ 맺음말 : 꼭 한마디 하고 싶어 올리는 글이나 읽어보시지는 말아주시길 ~ ~ (^.^)

이러한 얘기를 한다는 자체가 답답한 노릇이나 기존 강단 사학자들에게 한가지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도대체 사서의 기록은 지울 수가 없을 진데 동양의 모든 사서를 펴놓고 한번 공통되는 부분만 가지고 우리역사를 비교검토 해보라는 부탁이다.
어찌 지금 가르키는 역사책을 우리역사라고 가르킬 수 있는 가 ?
매국보다 더한 짓이다.

그리고 공부들 좀 했으면 좋겠다. 공부 즉 연구를 좀 하고 난 후 두려워 하지 말고 발표를 해라
나의 역사를 말하는데 왜 일본민족과 중국민족의 눈치를 보며 일제식민사학의 잔재를 떨쳐 버리지 못하는 가
"창피한 줄 알아야 한다"
"포트리스 용어"를 한번 인용한다. "알면서도 밥줄 떨어질까 말 안하는 바보탱이 들 ~ "

                                                                                              < 우리역사의 비밀  송준희>

< 참고 지도 >

 

 

 

 

 

 

 

 

 

 

 

 

 

 

 

 

 

 

 

 

 

 

 

 

                        

 

 <출처: 우리역사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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