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의 단서        HOME

아리랑,강강수월래,윷놀이,바둑,무궁화,서낭당,천하대장군 이러한 것들의 기원은 언제일까 또 어디일까? 이러한 것들이 바로 오래된 우리 역사의 단서가 되는것들이다.고인돌이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가장많다든가,무속 신화가 유달리 많은 것들은 가벼이 보아넘길일이 아니다.하나 하나 우리가 연구해야할 과제이다.

1.양궁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양궁에서 우리 나라가 금메달을 4개나 땄는데 남,녀 단체,개인 해서 양궁에 걸린 4개 모두를 우리 선수들이 석권했으니 양궁에 관한한 우리나라가 세계 제일 이라고 말할수 있을것 같다.이번 뿐만이 아니라 여자의 경우 88년 서울 올림픽부터 바르셀로나,애틀랜타,시드니에 이어서 아테네 올림픽 까지 5회 연속 단체전과 개인 전부문을 석권하였고 앞으로도 우리를 따라올 나라는 별로 없을 듯 싶다니 이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필연적인 우리민족의 잠재력의 발로가 아닌가 싶다.우리 민족이 누군가? 바로 동이족이다.물론 공자가 동쪽 오랑캐로 부르는 바람에 지나족들 한테는 그렇게 불렸지만 원래 이(夷)자는 큰대(大)자와 활궁(弓)자가 합쳐서된 글자로 말타고 활잘쏘는 우리민족을 좋게 표현한 글자였었다.고대에는 지나족들은 우리를 당하지를 못했었다.유목에 능숙한 우리 민족은 말을 타고 달리면서 활을 쏴 사냥을 하던 민족이라 날쌔기가 보통이 아니었다.사냥으로 다듬어진 쏨씨는 전쟁에서도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하여 지나족들과 100번싸우면 100번 다 이길정도로 날쌔고 용맹하였다.어벙하고 느려터진 지나족들은 우리의 상대가 되지를 못했었다.기원전 2,700 년경 우리 조상중에 치우천왕이란 분이 계셨는데 오늘날 중국인 들이 시조로 모시고 있는 황제 헌원을 대륙 한가운데 탁록(지금의 산동반도서쪽 하북성 지역)에서 마주쳐 싸웠는데 10년동안 73회를 싸웠는데 한번도 진적이 없다는 기록이 고기에 나오고 있다.물론 지나족 들은 헌원이 이겼다고 우기고 있는데 그후의 정황을 보면 우리의 치우천왕께서 이기신게 분명하다.우리가 졌다면 후에 진시왕이나 한나라 유방이 저희 조상인 황제를 놔두고 치우천왕을 기리는 제사를 지낼필요가 있었을까? 중국의 역사학계는 1993 년부터는 염제(炎帝) 황제(黃帝) 치우(蚩尤)를 삼조(三祖)로 모시겠다는 삼조사상을 들고 나오고 있다.우리 역사학계가 멍청하게 제조상도 몰라보고 방치하니까 이제 지나족들이 치우천왕을 자기네 조상으로 편입 시켜 버릴려는 움직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지나족들은 모든 사서에 치우가 탁록에서 패하여 죽었다는 것만을 기록하고 수천년 동안 치우천왕(蚩尤天王)에 대해서는 "형제가 81명이었으며, 짐승의 몸에 사람말을 하고 청동 머리에 무쇠 정수리를 하였으며, 쇳가루를 먹었다. 닥치는 대로 죽이고 잔인무도하였으며, 인자하지 못하였다"고 치우천왕을 아주 잔인하고 무식하고 포악한 괴물로 내리깔아 왔는데 이제와서 저희 조상으로 편입시켜 삼조신의 하나로 모시겠다니 참 뻔뻔하기 그지없다.치우천왕 한테 진 것을 이긴걸로 조작하기 위해서 치우천왕을 그렇게도 비하시키고 몹쓸 사람으로 모든 사서에 기술하더니 이제와서 탁록을 무대로한 5,000년전의 중국 문명의 기원을 치우천왕을 포함시켜 염제,황제 치우의 삼조사상으로 각색을 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학계가 언제 깨어나 이런 움직임에 대응 할수 있을지 생각하면 암담하기 까지하다.이 치우천왕에 대한 이야기와 삼조사상에 관해서는 별도로 논하기로 하고 양궁 이야기를 계속하자.

 결론적으로 우리 민족은 스스로 동이족인지도 모르고 우리 조상의 내력도 모른채 단군조선,고구려,대진국(발해)멸망후 1,000 여년을 살아왔지만 우리 민족의 탁월한 근성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그렇게 탁월한 성적을 내기는 어렵다.우리가 현대 양궁을 그렇게 오래전부터 해온 것도 아니고 올림픽의 양궁종목은 올림픽 초창기인 20세기 초에 4,5회 시행되다가 중단되어 72년 뮌헨 올림픽때부터 부활 됐는데 우리가 참가한 것은 1978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김진호가 금메달을 따낸 이후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우리나라 팀 전체가 아예 참가를 보이코트했었고 84년 LA 올림픽에서 서향순이 개인전 금메달을 목에건 이후 88서울 올림픽서부터는 개인 단체 모두를 우리가 석권하고 있는것이다.

 이것은 우리 선수들의 피나는 노력의 결실 인것은 분명 하지만 그 이전에 중원 대륙을 호령 하던 우리 조상들의 천부적인 혈통을 이어 받은 잠재력의 발원이 아닌가 싶다.그게 아니라면 과연 그렇게 잘할수 있을까? 세계 각국의 선수들도 막강한 실력에다 최고의 훈련,금메달을 따기 위한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을텐데 신흥 참가국인 우리를 만나면 맥을 못추는 것을 보면 아마도 우리 조상들의 천부적인 능력을 이어받아 그리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아니 할수없다.

2.노래방

지금 전국에 노래방이 많다.이제는 회식이나 술자리후에 2차로 노래방을 찾는게 당연 코스로 돼있다.전국적이다.전세계에서도 노래방이 우리나라가 제일 많다.다른 나라 사람들은 여럿이 모여도 그렇게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다.우리 민족은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좋아한다.여럿이 모였다 하면 들판이고 유원지고 버스 안이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좋아한다.흥이 많다.언제부터 그랬을까? 우연인가? 아니다.아주 오래전이다.고대 우리 환웅천왕 께서 나라를 개국하시고 신시를 열었던 때 부터이다.그전부터 인지도 모른다.신시는 무었인가.나라의 백성들과 주변 제후국들의 왕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하늘에 제사 지내고 각지방 특산물을 모아 시장을 열어 물물교환을 하고 백성들과 제후들을 교화하던 자리였다.대개 상달 즉 10월 3일에 열렸는데 당일 몇시간 하고 마는 것이 아니고 여러날 계속되었다. 하늘에 제사를 천왕께서 주재하시고 백성들은 둥그렇게 둘러서서 서로 손을 마주잡고 노래하면서 빙빙 돌았다.강강술래가 바로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이때가 년중 최고의 명절이 었으며 먹고 마시며 춤추는 축제를 여러날 계속했다.요즘의 추석과 설의 의미가 다 함축 되어 있는 듯하다.농사를 마무리 하고난 뒤의 축제와 새해를 기원하는 행사라고 볼 수 있겠다.애초에는 한해의 시작을 해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짓날로 보아서 음력 11월에 이행사가 열렸다고 한다.이런 오랜 전통과 풍속이 우리 민족에겐 있었다.그런 기질이 우리민족에겐 배어 있는 것이다.

그이후 단군조선,부여(영고 迎鼓)고구려(한맹寒盟 또는 동맹東盟) 예맥 (무천 舞天)신라 대진국,고려(팔관회)에 이르기까지 이행사는 이어져 왔었다.단군 조선때에는 소도(蘇途 제사 지내는 장소)에서 결혼하지 않은 사내들로 하여금 여러가지 사물을 익히고 연마하게 하였다. 대체로 글을 읽고, 활을 쏘며, 말을 타고 예절을 익히고, 노래를 배우며 격투기, 검술 등의 여섯가지 기예(讀書 習射 馳馬 禮節 歌樂 拳搏術釗 六藝之類也)를 연마하게 하였다한다.단재 신채호 선생도 단군시대 제천일에는 각 지방의 대표가 와서 장엄한 예식을 행하고 수십일 동안 큰 경기회를 열었는데, 후세에도 전국의 백성들이 크게 모여 소장의 기술을 발휘하여 승부와 명예를 겨루게 되었으며 그것이 <고려사>에 이른바, 팔관회 끝에 "신라의 古事대로 백기와 가무를 習한다"고 한, 전통 풍속으로 잔존되었다는 것이다. 즉 이 百技 歌舞가 단군조 때부터 전승되어 풍속화되었는데, 그 종류로서 한맹(寒盟) 수박(手搏) 검술(劍術) 궁시(弓矢) 격구(擊球) 금환(金丸) 주마(走馬) 회렵(會獵)의 8가지를 밝혀냈던 것이다. 올림픽의 기원이 여기에 있었다.판소리를 비롯한 아악도 이때부터이다.세계 각종 예술의 기원이 다 우리조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단고기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 종반부에보면 이런구절이 있다.<삼한에 옛 풍속이 있는바 모두 10월 상순에 국중대회를 열어 둥근 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지낸다. 땅에 제사지냄을 방구라 하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제사지냄은 각목이라 하나니, 산에 웅상의 상을 만듬은 모두 그 유법이다. 하늘에 제사지냄에 있어서 반드시 한(임금)이 몸소 제지내니 그 예법이 매우 성했음을 알 수 있다. 그날 멀리 가까이의 모든 사람들이 그 생산한 것을 바치고는 북치고 나팔 불며 온갖 놀이를 벌이고, 여러 작은 나라들이 찾아와 특산물을 바치니 진기한 것들이 언덕과 산처럼 둥그렇게 쌓인다. 대저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하였으니 곧 관경을 번식케하는 원인이 되었으며, 소도의 제천은 구려를 교화하는 근원이 되었다. 이로부터 화를 당하여 함께 힘쓰고 이웃을 위하며, 있는자와 없는 자가 서로 도우니, 문명은 나라를 이루고 개화 평등하여 온 세상에 제사의 예를 숭상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삼한은 단군조선 시대를 의미한다.삼한은 관경제로 나라를 진한 마한 번한 세지역으로 나누어서 단군께서는 진한에 상주하시며 진한을 중심으로 다스리시되 전체를 관장하시고 번한과 마한을 임명하여 그지역을 관장하게 하시었다.번한과 마한은 단군천왕의 신하이면서 그지역의 왕이었으나 당연히 단군천왕의 지휘 통제를 받는 체제였다.

결국 우리 민족이 먹고 마시고 춤추며 노래하는 기질도 다 오래된 우리 조상님들의 유산인 것이다.원인 없는 결과 없드시 오랜세월 흐르면서 우리도 모르게 그런 조상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우리 민족의 역사는 아주 장구하다.음악도 우리가 세계 제일이다.하면된다.노력하자.세계를 제패할수 있다.몇년전 작고하신 정주영 회장의 생전 육성중에 "모든일은 하면된다는 자신감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씀을 새겨두자.무엇이던지 할 수 있는 민족이 우리 민족이다.어깨를 쭉펴고 하늘을 향해 나래를 펴자.이 지상의 유일한 천손(天孫)족인 한桓 족들이여! 자신감을 회복하자! 지구가 돌고 우주만물이 돌 듯이 지구의 역사도 돈다.2,239년전 지상 최대의 제국 단군조선의 47대 고열가 단제께서 조선을 폐관하시고 승천하신 이래 역사는 중원대륙을 건너 인도로 중동으로 유럽으로 아메리카로 돌아 이제 다시 우리나라를 향해 오고있다.미래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다.미국도 아니고 일본도 중국도 아닌 바로 대한민국 우리다. 언제까지 주변 강국들의 간섭을 받고 눈치만 보며 살 것인가? 분발하라 대한의 건아들아! 우리가 최고다! 세계에 우뚝 서리라!

3.한류열풍

이게 또 작난이 아니다.몇년전부터 대만,중국,베트남 등지에서 일기 시작한 한류 열풍이 이제는 일본에 이어 중남미 까지 퍼져나가고 있다.대중음악,영화,드라마등 각부문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것이다.미국 음악,영화,드라마등 미국 문화의 홍수속에 빠져있던 세계인들이 한국의 대중 예술을 접하고는 몸속 깊은곳에서 우러나오는 내면으로 통하는 정서를 발견한 것이다.팦송이나 할리우드 영화가 채워주지 못하는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한 내면의 따뜻한 정서 이게 바로 한류열풍의 정체성이며 각광받는 이유이다.마치 엄마품에 안겨 젖을 빨던 어린시절의 포근함과 따뜻하고 아늑한 요람 같은 정서를 느끼는 것이다.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이것 역시 오래된 우리 문화의 잠재의식의 발로다.우리 몸속 깊은곳에 혼이 깃들은 예술성이 있는 것이다.그것이 나도 모르게 자연스레 표현되는 것이다.우리가 잘하는 말로 오리지날 원류의 문화가 바로 우리 문화이기 때문이다.우연이 아니다.아무 민족이나 세계인들의 가슴을 울리고 사로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일시적으로 인기가 있을 수는 있지만 오래가진 않는다.9,000여년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문화를 바탕으로한 우리 한국의 문화예술 즉, 한류열풍은 쉽게 가라않지 않을 것이다.오히려 유럽 북미등 전세계로 뻗어나갈 것이다.대한민국이 문화대국이 되는 것이다.헛소리가 아니라 당연한 귀결이다.자긍심을 같고 부지런히 노력하라! 한국인 들이여! 세계가 우리들의 무대이니라.

4.제사

상고사를 접하면서 감격하고 흥분한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반도 구석의 보잘 것 없는 민족인줄로만 알고 배우고 자랐는데 반대로 우리가 가장 크고 가장 세고 가장 훌륭한 나라였다는 메시지는 나를 감격하고 흥분 시키기에 충분했다.나뿐만이 아니라 상고사를 접한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을 것이다.때론 혼란 스럽기까지도 하였다. 이게 사실인지 아니면 식민사관 학자들 말처럼 국수주의자들이 지어낸 이야기인지 혼란된 마음을 추스리기 힘들었다.때론 가슴 앓이도 했다.우리의 역사학계 현실을 알고는 더욱더 그러했다.반도 만을 고집하는 그들에 의해 씌여진 교과서하며 우리 역사엔 있지도 않은 원삼국시대란 표현을 써가며 4,5세기 이전의 유물들을 표시하고 있는 박물관도 그러했다.중국과 일본은 가능한 최대한 과장해서 역사를 쓰는데 반해 우리는 멀쩡히 살아있는 역사를 3분의2나 왜곡 축소해서 써놓고 그것을 지키려고 목숨을 내놓다시피 저러고들 버티고 있으니 한심하고 답답해서 죽을 노릇이었다.그것도 왜놈들이 저희 역사를 우리 보다 상위에 올려놓기 위해서 짜맞추느라 조작해논 역사를 진실인양 떠받들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없을 뿐이다.역사를 좀 알고 우리 주변을 살펴보니 수긍이 가는 요소가 여기 저기 우리 생활 저변에 깊고 널리 퍼져 있는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들에서 소주병 따고 한잔 쏟아 버리면서 "고시레"하던 것이나,동짓날 팟죽쒀서 장독대고 뒤울안이고 화장실이고 갖다놓던일,부싯돌의 유래,자식을 낳을땐 삼신할미가 점지해 주신다는말, 서낭당,천하대장군,지하여장군,윷놀이, 바둑, 무궁화며 아리랑,이런 것들이 다 오래전부터 우리 조상 대대로 전래된 우리고유의 전승된 산물들이라는 것을 알게됐다. 기원도 모르고 무심코 살아온 지난날의 우리들의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졌다.이것들이 하나하나 규명해야할 우리들의 몫인 것이다.탐구하고 연구하여야 한다.무턱대고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제조상에 관련된 것인데 모른척 한 대서야 말이되겠는가. 수천년 가려진 역사이기 때문에 가능성을 두고 부단한 연구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역사의 진실이 분명히 밝혀 질 것이다.

우리나라가 외국과 다른 문화 하나를 꼽으라면 제사가 아닌가 싶다.나도 제사는 유교적인 풍습 그러니까 중국에서 유래한 것인줄 알았다.그런데 중국인들도 우리처럼 제사를 철저히 지내지 않는다는 것이다.세계에서 유독 우리만이 제사를 모시는데 가장 열심이라는 것이다.이것도 다 연유가 있었다.제사는 중국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 고대 우리나라에서 기원한 것이었다.천손족으로서 한인천제께서 하늘에 제사 지내던 데서 유래한 것이었다.9,000년 전부터 지내온 우리고유의 풍속이었다.고대에 한인 한웅 단군 시대의 제사는 오늘날의 제사와는 정도와 규모가 달랐다.그당시 자연의 변화 재해 모든 것은 하늘의 계시에 의해 발생되는 것으로 받아들여 지던 시절이라 한인 한웅 단군께서 주재하여 하늘에 지내는 제사는 전 국가적 행사였다.그리고 한인 한웅 단군님들은 하늘의 아들 즉 천자로 받들어 졌고,그영향력은 동아시아전체에 미쳤다.식민사관 학자들이 말하듯이 일개부족의 군장이 아니라 제정 일치의 중원 대륙 전체와 한반도 일본에 이르는 대제국의 천자이셨다.천왕,천제로도 불렸다.지나족이나 왜족들은 일개 부족국가에 불과했기 때문에 감히 <천 天>자를 넣지 못했다.오로지 천손족인 우리의 제왕들만이 천자로 군림하였던 것이다.진시왕 정이 중원 대륙을 통일하고 황제를 잠칭하기 시작했지 그이전엔 7,000년동안 오직 우리 한桓족의 제왕만이 천왕이란 호칭을 썼던 것이다.일본이 오늘날 까지 천황(天皇)을 고집하고 있지만 이는 허구 날조에 불과하다.그들은 670년 일본이란 칭호를 사용하고 40대 천무왕 이후에나 전국적인 중앙집권 체제가 형성 되었지 그이전엔 100여개 소국으로 나뉘어져 있던 소국에 불과했었다.일본서기의 작자가 기원전 659년 신무라는 가공인물을 내세워 일개 소국의 왕들을 요리 조리 짜 맞추어 만들어낸 조작된 역사이다.건방지게도 천황이란 칭호까지 사용하여 그럴싸하게 포장한 소설의 역사이다.그리곤 오늘날까지 양심을 속이고 오랜 역사의 문화 민족 인양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거짓 역사를 짜맞추기 위해서는 조작도하고 위조도 하고 날조도 하고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 일본 사람들이다.그리고는 36년동안 우리를 그렇게도 못살게 굴었다.아주 나쁜 사람들이다.양심이라구는 털끝만큼도 없는 악랄한 민족이다.그리고 요즘엔 또 교과서를 조작할려고 잔머리를 굴리고 있다.그게 창피하면 잘못을 저지르지 말았어야지 악랄한 못된짓은 다해놓고 이제와서 그런일 없었던척 감출려고 기를 쓰는꼴이 애처롭기 까지하다.우리나라 친일파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오늘날 까지 친일파와 그후손들이 설쳐대고 있는거와 같이 일본도 전범처벌이 미약했다.미국이 미적지근 그냥 넘겨줬다.우리 친일파도 마찬가지다.독일의 나치 처벌은 오늘날 까지도 계속되고 있건만 일본은 사과 한번 제대로 하지 않은채 버티더니 이제는 다시 군국주의가 머리를 들을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악을 바탕에 깔고 있는 민족이 왜놈들이다.계속 까불다가 태평양 속으로 가라 앉아 버릴 것이다. 우리 사회 일부에선 아직도 일왕을 천황이라고 깍드시 부르는 인사가 있는데 그건 잘못된 것이다.일왕정도로 불러주면 충분하다.미개 족장에게 천황이라니 얼토당토 않은 망발이다.

고대 우리 조상님들의 제사의 의미는 대단한 것이었었다.오늘날 점점 제사를 지내지 않거나 형식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는데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부모님과 조상님을 기리는 효사상은 전세계에 내놓고 자랑할 만한 것이며 우리가 지켜갈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것이다.자식 교육에도 좋을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외국인들은 고층빌딩 보러 우리나라에 오지 않는다.자기 나라에 없는 우리 고유의 것을 찾아 오는것이다.관광 문화상품으로서의 가치도 충분히 있다하겠다. 제사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 봐야할 때인 것 같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삼년상을 지내던 풍습도 우리나라에서 비롯된 것이다 2대 단군 부루대에 이런 기사가있다(단군세기).<임인 2년(B.C.2239) 단제께서는 소련.대련을 불러 다스림의 길을 물으셨다. 이보다 앞서 소련과 대련은 상을 잘치루었으니, 사흘 동안을 게을리 하지 않고, 석 달 동안 느슨하지 않았고, 한 해가 지났을 때까지 슬퍼 애통해 하였으며 삼년 동안 슬픔에 젖어 있었다. 이 때로부터 온통 풍속이 변하여 상을 치룸에 다만 다섯달로 멈추던 것을, 오래 될수록 영광된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공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공자보다 2,000여년 먼저 우리 조상들은 이런 제도를 시행하고 있었던 것이다.공자만 숭상하고 떠받들일이 아니다. 공자가 술이부작(術以不作)이란 얘기를 했는데 그건 사실인 듯하다.그이전 우리선조들이 수천년 연구하고 시행하여 오던것들이 전해져 내려온 것을 전했을 뿐이지 자기가 지어낸 것들이 아니라는 이야기다.우리 조상들 중엔 공자보다도 더훌륭한 선인들이 많이 있었다.헌원이를 가르치셨다는 자부선생을 비롯해서 신지 혁덕, 가림토 문자를 만드신 삼랑 을보록(3대 단군 가륵때 사람)등 아주 많다.공자보다 2,000 년 전일이라 기록이 분명하지 않아서 그렇지 아마 공자는 축에도 못꼈을거다.

 5.무속신앙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삼국을 통일한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모화사상에 젖기 시작하는데 그와 동시에 찬란했던 고대 우리 역사와 문화는 시련을 맞게된다.고대 사서들은 사라지고 당나라 문화에 밀려 우리 문화는 서서히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우리문화의 자리를 유학과 불교와 도학등 외국의 전래문화가 이땅에 뿌리를 내리고 자리를 잡아 버린다.갈곳 잃은 우리의 문화는 도인들에 의해 깊은 산속으로 잦아들고 일반 백성들에 의해 무속으로 젖어든다.미신으로 치부해온 우리의 무속에는 우리 고유의 전래 문화가 많이 있다.지금 설악산에서 매년 가을 치뤄지는 산신제는  한웅.단군시대 때 천신께 올리던 제사가 이어져 내려 오는 것이다.  

                                -계속-

 

*2001년3월 24일 홈페이지를 처음 개설할 때  썼던글을 2005년9월13일 조금 보태고 고쳤다. 

            
                                                                                                 <多慧  吳成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