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지 해설서> 
            
             
    "마고복본을 꿈꾸며"
                                       
  김 태형 

머리말

처음 시작에 앞서…

처음에 부도지(符都誌)를 봤을 때 난 무척이나 당황을 했다.
강단 사학자들이 주장하던 역사, 내가 공부를 했었던 재야사학자들이 주장하던 역사와도 차이가 있는 또 하나의 역사….

난 이 역사를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지를 놓고 많이 고민을 했었다.
태백일사의 삼신오제본기편에 나오는 창조신화와도 내가 별도로 연구를 했던 창조신화와도 틀린 또 다른 하나의 세계창조관을 가지고 접근을 하여 나로 하여금 선택의 기로에 서게 한 그런 책 이였다.

그리고 지금은 확신을 한다.
적어도 선도를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반듯이 읽어야만 선도의 목적을 이해를 할 수 있으리라고…

한단고기의 삼성기 편에 보면 한국(桓國)의 역년이 63,182년 또는 3,301년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렇게 다른 두 가지의 년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오미의 난은 무엇이고 왜 박재상이 이 책을 만들었으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유는 무엇인지를 같이 공부를 해 보기로 하자.
또한 강단사학가들에 의해 얼마나 왜곡된 역사를 배웠는지를 보면서 세계사 속의 흔적을 찾아 여행을 떠나보는 그러한 시간이 되도록 하겠다…

( 원래 마고성 이후 한국, 배달국으로 이어지던 부도의 법이 조선의 3국 중 진한이 신라가 되고 그 전통을 박혁거세가 받았다. 고구려는 조선의 말기 고열가단군의 폐관이후에 해모수의 반란으로 만들어진 부여의 후손으로 한단고기는 한국, 배달국, 조선, 부여, 고구려로 이어지는 내용으로 실제의 주된 전통은 신라를 통해 이어 졌다 보기에 이 책은 부도지(符都誌)를 중심으로 한단고기(桓檀古記)의 내용을 추가하여 설명을 하겠다.)

개천 5897년, 단기 4332년 10월 1일
사무실에서…


목차

I 조화(造化)의 시대
1장 마고(麻故)의 시대
부도지 1장, 2장, 3장, 4장
제 1 부 도입에 앞서…
제 2 부 신화에의 접근

2장 부도(符都)의 시대
부도지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제 3 부 부도(符都)의 시대
제 4 부 오미(五味)의 화(禍)가 말하는 의미는…
제 5 부 한국(桓國)시대
II 교화(敎化)의 시대
3장 배달국 시대
부도지 11장
제 6 부 : 환웅(桓雄)씨 시대

4장 임검(壬儉)씨 시대(조선 시대)
부도지 12장, 13장, 14장, 15장, 16장
제 7 부 임검(壬儉)씨 시대


5장 오행(五行)의 화(禍)
부도지 17장, 18장, 19장, 20장, 21장, 22장, 23장, 24장
제 8 부 : ‘오행(五行)의 화(禍)’가 주는 의미
제 9부 한사군의 허구
III 치화(治化)의 시대
6장 잃어버린 부도의 법
부도지 25장, 26장
제 10부 잃어버린 부도의 법

7장 삼한에서 삼국으로
부도지 27장
제 11부 열국시대로

8장 잃어버린 역사
부도지 27장
제 12부 한사군의 허구

9장 어둠속으로
부도지 28장, 29장, 30장, 31장, 32장, 33장
제 12부 어둠속으로



I.조화(造化)의 시대

우리나라 전통사상에서 보면 인간에게 본래 신성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 동학에서는 이를 보고 인내천(人乃天)이라 하였다.
부도지에서는 인간이 어떻게 본성을 잃게 되었는지 이유가 나온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본성을 찾아 다시 마고성(이상향)으로 복본을 할 수 있는지도…

부도지를 크게 세부분으로 나누면 조화(造化)의 시대와 교화(敎化)의 시대, 치화(治化)의 시대로 구분을 할 수 있다.
처음 부도의 시작에서는 땅에서 나는 지유(地乳)를 먹으므로 먹기 위해 노동을 할 필요가 없었다. 또한 음식이 한가지뿐이므로 맛을 추구할 수도 없어 추구해야할 욕망의 대상이 없었다.
그래서 이때의 사람들은 본성만을 가지고 생활을 했으므로 신성을 가지고 있어 천지 창조에 동참을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아무런 할 일이 없었으므로 유일하게 할수 있는 일이란 율려(律呂)만이 존재했고 이를 율려로써 천지를 창조한 것으로 표현을 했다.
부도지는 이를 표현하기를 마고성은 지상에서 가장 높은 성이다라 하였다.


제 1장 : 마고(麻故)의 시대

第一章

마고성(麻姑城)은 지상(地上)에서 가장 높은 성(城)이다. 천부(天符)를 봉수(奉守)하여, 선천(先天)을 계승(繼承)하였다. 성중(成中)의 사방(四方)에 네 명의 천인(天人)이 있어, 관(管)을 쌓아 놓고, 음(音)을 만드니, 첫째는 황궁(黃穹)씨요, 둘째는 백소(白巢)씨요, 셋째는 청궁(靑穹)씨요, 넷째는 흑소(黑巢)씨였다. 두 궁씨의 어머니는 궁희(穹姬)씨요, 두 소씨의 어머니는 소희(巢姬)씨였다. 궁희와 소희는 모두 마고(麻姑)의 딸이었다. 마고는 짐세(朕世)에서 태여나 희노(喜怒)의 감정이 없으므로, 선천(先天)을 남자로 하고, 후천(後天)을 여자로 하여, 배우자가 없이, 궁희와 소희를 낳았다. 궁희와 소희도 역시 선천의 정을 받아, 결혼을 하지 아니하고, 두 천인(天人)과 두 천녀(天女)를 낳았다. 합하여 네 천녀였다.

麻姑城은 地上最高大城이니 奉守天符하야 繼承先天이라, 成中四方에 有四位天人이 堤管調音하니 長曰 黃穹氏오 次曰 白巢氏오 三曰 靑穹氏오 四曰 黑巢氏也라. 兩穹氏之母曰穹姬오 兩巢氏之母曰巢姬니 二姬는 皆麻姑之女也라. 麻姑ㅣ生於朕世하야 無喜怒之情하니 先天爲男하고 後天爲女하야 無配而生二姬하고 二姬ㅣ赤受其精하야 無配而生二天人二天女하니 合四天人四天女야라.

第二章

선천(先天)의 시대에 마고대성(麻姑大城)은, 실달성(實達城)의 위에, 허달성(虛達城)과 나란히 있었다. 처음에는 햇볕만이 따뜻하게 내려 쪼일 뿐, 눈에 보이는 물체라고는 없었다. 오직 8 여(呂)의 음(音)만이 하늘에서 들려 오니, 실달성과 허달성이, 모두 이 음에서 나왔으며, 마고대성과 마고도, 또한 이 음(音)에서 나왔다. 이것이 짐세(朕世)다. 짐세 이전에, 율려(律呂)가 몇 번 부활하여, 별들(星辰)이 출현하였다. 짐세가 몇 번 종말을 맞이 할 때, 마고가 궁희(穹姬)와 소희(巢姬)를 낳아, 두 딸로 하여금, 오음칠조(五音七調)와 음절(音節)을 맡아보게 하였다. 성중(城中)에 지유(地乳)가 처음으로 나오니, 궁희와 소희가, 또 네 천인(天人)과 네 천녀(天女)를 낳아, 지유를 먹여, 그들을 기르고, 네 천녀에게는 여(呂)를, 네 천인에게는 율(律)을 맡아보게 하였다.

先天之時에 大成이 在於實達之上하야 與虛達之城으로 ?列하니 火日暖照하고 無有具象하야 唯有八呂之音이 自天聞來하니 實達與虛達이 皆出於此音之中하고 大城與麻姑ㅣ赤生於斯하니 是爲朕世라. 朕世以前則律呂幾復하야 星辰巳現이러라. 朕世幾終에 麻姑ㅣ生二姬하야 使執五音七調之節하다. 城中에 地乳始出하니 二姬又生四天人四天女하야 以資其養하고 四天女로 執呂하고 四天人으로 執律이러라.

第三章

후천(後天)의 운(運)이 열렸다. 율려(律呂)가 다시 부활하여, 곧 음상(音象)을 이루니, 성(聲)과 음(音)이 섞인 것이었다. 마고가 실달대성(實達大城)을 끌어당겨, 천수(天水)의 지역에 떨어드리니, 실달대성의 기운이 상승하여, 수운(水雲)의 위로 덮고, 실달의 몸체가 평평하게 열려, 물 가운데에 땅이 생겼다. 육해(陸海)가 병렬(?列)하고, 산천(山川)이 넓게 뻗었다. 이에 천수의 지역이 변하여, 육지가 되고, 또 여러 차례 변하여, 수역(水域)과 지계(地界)가 다 함께 상하가 바뀌며 돌므로, 비로서 역수(曆數)가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기(氣) 화(火) 수(水) 토(土)가 서로 섞여 빛이 낮과 밤, 그리고 사계절을 구분하고, 초목(草木)과 금수(禽獸)를 살찌게 길러내니, 모든 땅에 일이 많아 졌다. 이에 네 천인이 만물(萬物)의 본음(本音)을 나눠서 관장(管掌)하니, 토(土)를 맡은 자는 황(黃)이 되고, 수(水)를 맡은 자는 청(靑)이 되어, 각각 궁(穹)을 만들어, 직책을 수호 하였으며, 기(氣)를 맡은 자는 백(白)이 되고, 화(火)를 맡은 자는 흑(黑)이 되어, 각각 소(巢)를 만들어, 직책을 지키니, 이것으로 인하여 성(姓氏)이 되었다. 이로부터 기(氣)와 화(火)가 서로 밀어, 하늘에는 찬 기운이 없고, 수(水)와 토(土)가 감응(感應)하여, 땅에는 어긋남이 없었으니, 이는 음상(音象)이 위에 있어, 언제나 비춰주고, 향상(響象)이 아래에 있어, 듣기를 고르게 해 주는 까닭이었다.

後天運開에 律呂再復하야 乃成響象하니 聲與音錯이라. 麻姑ㅣ引實達大城하야 大城之氣ㅣ上昇하야 布幕於 水雲之上하고 實達之?ㅣ平開하야 闢地於凝水之中하니 陸海?列하고 山川이 廣圻이라. 於是에 水域이 變成地界而雙重하야 替動上下而斡旋하니 曆數始焉이라.
以故로 氣火水土ㅣ相得混和하야 光分書夜四時하고 潤生草木禽하니 全地多事라.
於是에 四天人이 分管萬物之本音하니 管土者爲黃하고 管水者爲靑하야 各作穹而守職하고 管氣者爲白하고 管火者爲黑하야 各作巢而守職하니 因稱其氏라. 自此로 氣火共推하야 天無音冷하고 水土感應하야 지무흉戾하니 此는 音象이 在上하야 常時反照하고 響象이 在下하야 均布聽聞姑也라.

第四章

이 때에, 본음(本音)을 관섭(管攝)하는 자가 비록 여덟 사람이었으나, 향상을 수증(修證)하는 자가 있지 않았기 때문에, 만물이 잠깐 사이에 태여 났다가, 잠깐 사이에 없어지며, 조절이 되지 못하였다. 마고(麻姑)가 곧, 네 천인과 네 천녀에게 명하여, 겨드랑이를 열어 출산(出産)을 하게 하니, 이에 네 천인이 네 천녀와 결혼하여, 각각 삼남(三男) 삼녀(三女)를 낳았다. 이가 지계(地界)에 처음 나타난 인간의 조상(人祖) 였다. 그 남녀가 서로 결혼을 하여, 몇 대(代)를 지내는 사이에, 족속(族屬)이 불어나, 각각 3000명의 사람이 되었다. 이로부터 12사람의 시조는 각각 성문(城門)을 지키고, 그 나머지 자손은 향상(響象)을 나눠서 관리하고, 수증(修證)하니, 비로서 역수(曆數)가 조절되었다. 성중(城中)의 모든 사람은, 품성(稟性)이 순정(純精)하여, 능히 조화(造化)를 알고, 지유(地乳)를 마시므로, 혈기(血氣)가 맑았다. 귀에는 오금(烏金)이 있어, 천음(天音)을 모두 듣고, 길을 갈 때는, 능히 뛰고, 걷고 할 수 있으므로, 내왕(來往)이 자재(自在)하였다. 임무를 마치자, 금(金)은 변하여 먼지가 되었으나, 그 성체(性體)를 보전하여, 혼식(魂識)이 일어남을 따라, 소리를 내지 않고도 능히 말을 하고, 백체(魄體)가 때에 따라 움직여, 형상을 감추고도 능히 행동하여, 땅 기운(地氣) 중에 퍼져 살면서, 그 수명(壽命)이 한이 없었다.

是時에 管攝本音者ㅣ雖有八人이나 未有修證響象者故로 萬物이 閃生閃滅하야 不得調節이라. 麻姑ㅣ乃命四天人四天女하야 ?脇生産하니 於是에 四天人이 交娶四天女하야 各生三男三女하니 是爲地界初生之人祖也라. 其男女ㅣ又復交娶하야 數代之間에 族屬이 各增三天人이라. 自此로 十二人祖는 各守城門하고 其餘子孫은 分管響象而修證하니 曆數始得調節이라. 城中諸人이 稟性純精하야 能知造化하고 飮?地乳하야 血氣淸明이라. 耳有烏金하야 具聞天音하고 行能跳步하야 來往自在라. 任務己終則遷化金塵而保己性體하야 隨發魂識而潛能言하고 時動魂體而潛能行하야 在住於地氣之中하야 其壽無量이러라


제 1 부 도입에 앞서…

부도지에서의 1,2,3,4장을 창조의 시대로 분류를 해 보았다.
혹시 본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나 ‘한단고기’에서 ‘태백일사’ 안에 보면 ‘삼신오제 본기’에서 또한 창조신화가 나온다. 나반과 아만의 이야기가 나오고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의 이야기도 나온다. 같은 창조신화를 이야기를 하는 것임에도 불구 하고 이 두 가지의 내용은 완전히 틀리다.

이 두 가지의 차이는 뭘까?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책이 만들어진 배경을 봐야 한다.

부도지에서는 세상에서 제일 높은 성인 마고성에서 있는 백소씨족(白巢氏族)의 지소씨(支巢氏)에 의하여 오미(五味)의 화(禍)가 일어나 결국 황궁씨는 무리를 이끌고 마고성을 나오게 되었다.
이때 황궁씨는 다시 마고성으로 복본하기 위하여 부도의 법을 세우니 이것이 부도지의 근원이 되는 사상이다. 이후 한국과 배달국과 조선으로 이어지던 부도의 법은 진한을 통하여 박혁거세에게 이어지니 부도의 법을 신라가 이어 받았다. 그렇기에 신라의 법이 고려로 이어지나 묘청의 난 이후 세력을 잃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완전히 잊혀지게 된 것이다.

한단고기란 진한의 제후국이었던 변한을 통하여 부여 고구려 발해를 거쳐 만들어진 역사를 조선시대에 정리를 한 것이다. 그렇기에 주변에서 보는 객관화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나 부도의 법을 찾을 수가 없어 이 책에서는 부도지를 중심으로 다른 것을 합쳐가며 이야기를 풀어 가겠다.

제 2 부 신화에의 접근

[오랜 세월 동안 신화의 형식으로 전해진 이야기의 껍데기속에는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 숨겨져 있는데도 이를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고대의 경전에서 몇 년 몇 월에 입에서 불을 품는 용이 하늘에 나타났다는 기록을 보았을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 선택 앞에 서게 된다.
1 문자 그대로 이해한다. (어린아이나 이런 방식으로 이해 한다.)
2 철저하게 허구라고 생각 한다. (아주 손쉬운 방법이지만 과학적인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다.)
3 신화나 종교로 덮인 베일 속에서 기록의 재료가 된 사실을 찾는다. 예를 들면 혜성이나 유성, 또는 그 이 사물의 출현을 찾아내려고 한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학자와 연구자가 선택해야 하는 길이다.)]
--<잃어버린 고대문명> 중에서-
고르보프스키의 이러한 설명은 신화에 접근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잘 말한 것 같아 여기 첫머리에서 이야기를 하였다.

신화를 접근 하는 방법은 다른 역사자료와는 달리 단순히 활자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비밀을 탐구를 해 나가야 한다. 자칫 그 껍데기에 연연할 경우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바뀐 내용을 그대로 받아 들여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듯 전혀 다른 엉뚱한 형상을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부도지의 시대흐름을 보면 마고성에서 나와 황궁씨 유인씨 한인씨 한웅씨 임검씨 부루씨 읍루씨가 각기 천년씩 7천년을 다스리는 것으로 나온다.
황궁씨가 처음 부도의 법을 밝혀 읍루씨까지 7천년의 기간동안 전해지고 그 법을 잃게 된다.
그런데 한사람이 어떻게 천년을 살 수가 있을까?
위에 제시한 방법으로 생각한다면

첫번째, 진짜 천년을 살았다(이러면 정말 신화가 되어 버린다.)
두번째, 사람이 천년을 살 수 없으므로 허구다.(가장 마음 편한 소리지만 이렇게 생각을 한다면 이책을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으니 조용히 덮어 주시기를 바란다.)
세번째, 이것은 인간의 수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왕조나 혈통 그밖의 다른 것을 이야기 한다. (이것이 이 책에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고대사회를 보면 아주 이상한점이 보인다.
그것은 세금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국가가 유지 될수 있는 최소한의 양보다도 적다.
조금 자세히 설명을 해 보자.
마을이 있으면 치안을 위한 조직이 필요하고 그것이 많아지면 관리를 위한 행정조직이 필요하다. 그들이 행정과 치안에 전념을 하려면 그들의 생계는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기에 세금이 필요하다.
생각해 보자 백명이 사는 마을에 치안을 유지하려면 몇 명이 필요할까? 최소 두세명의 경찰조직이 필요할 것이고 마을에 일어나는 각종 분쟁을 해결할 인원도 몇 명 필요할 것이다.
또 여러 마을이 모여 고을이 되면 고을을 관리할 조직이 또 필요 할 것이고. 고을이 모여 국가가 되면 국가를 관리 할 조직이 또 필요 할 것이다. 또한 국방을 담당하는 군사조직도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이것 저것 다 따져 보면 세금이 최소 1/4에서 1/2사이 이여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당시는 국가를 유지 할 최소한의 세금도 없는 것이다. 또한 한국 배달국 조선은 너무나 큰 영토를 가지고 있으나 한국이 3301년, 배달국이 1565년, 조선이 2096년…
너무나도 오랜 기간동안 국가를 유지 할수 있었다.
중국의 여러 국가들, 사라센, 몽고등…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렇게 거대한 국가가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국가를 유지한 전래가 있는가?
이 규모로 이정도 기간을 유지 할려고 한다면 상식적으로는 강력한 중앙 통제 체제가 정비 되어야 하고 그렇기 위해선 과도한 세금이 필연적이다. 그러나 세상에 그 전례가 없을 정도로 적은 세금을 거뒀다. 이는 당시의 모습이 우리의 상식상에 있는 국가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뜻한다.

후조선시대때 보면 마을마다 연세가 드시고 인망이 높아 마을 사람들이 존경하는 사람이 한명씩 있다. 사람들은 관가의 말보다 고을 원님의 말보다 이분의 말을 더 따르고 마을의 대소사를 이분께 논의를 하였다. 나는 이것을 마고의 흔적이라 보고 싶다. 그렇게 적은 세금으로 관리가 불가능하다면 중앙에서 관리를 하지는 않고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시스템은 없는가 생각하다가 떠오른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치안과 관리를 맡으면 어떨까 그러면 치안을 위한 관리를 위한 조직이 불필요 할 것이고 약간의 군사조직이나 중앙 조직만 있으면 되니까 세금이 적어도 되지 않을 것이 아닌가. 마을 마다 존경 받는 사람이 있고 이사람은 또 자신보다 학식이나 덕망이 더 높은 사람을 따르고…
인류의 큰 스승은 천년에 한명씩 나온다니까 이렇게 보면 황궁씨 유인씨 환인씨등이 천년을 사는 이유가 설명이 되지 않을까?
당시는 힘으로 통제하는 시대가 아니라 깨닮음으로 자율적으로 따르는 세상이였고 큰 스승의 법이 천년을 내려 간다 하면….
앞의 모든 것이 시원하게 설명이 된다.

자 그러면 이제 다시 부도지로 들어 와서 계속하겠다.

앞의 부도지 1장에서 보면 마고(麻姑)가 선천(先天)을 남자(男子,陽)로 후천(後天)을 여자(女子,陰)로 하여 궁희(穹姬)와 소희(巢姬)를 낳았다. 이 둘이 다시 선천의 정기(陽)의 기운을 받아 황궁씨(黃穹氏)와 청궁씨(靑穹氏), 백소씨(白巢氏)와 흑소씨(黑巢氏)를 낳았다. 이들로 하여금 오음칠조(五音七調)와 음절(音節)을 맡게 하고, 다시 네 천인(四天人)과 네 천녀(四天女)를 낳아 율과 여를 맡아 보게 하였다.
마고가 네 천인(四天人)과 네 천녀(四天女)에게 명하여 이들이 합하여 각기 3남 3녀를 낳으니 모두 12쌍 24명이 되었다. 한국의 본체가 되는 9황64민이 다 이들의 후손이 된다.

자 이상이 부도지(符都誌)의 1,2,3,4장을 총괄한 족보이다.
여기서 어떠한 수(數)가 보이고 무엇을 느끼는가?

단순하게 그냥 조상님의 족보로만 생각하지 말고 잘 살펴보자.
글쎄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다 생각이 되는가?

좋다 그럼 이번에는 동양철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역학(易學)에서 살펴보자.

태초에 무극(無極)이 있으니 무극에서 태극(太極)이 나오고 태극에서 사상(四象) 팔괘(八卦) 육십사괘(六十四卦)로 나눠지면서 황극(黃極)으로 발전하고 그것이 극(極)에 이르면 다시 무극으로 환원을 하고….
이렇게 놓으니 뭔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다시 시간에 비유를 하니 우주는 밤과 낮으로 나누고 다시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로 나누고 각 계절이 3으로 나눠져서 12달이 되고 각 달에서 음과 양으로 나누면 24절기가 되고….
이러니 이것 봐라 이번에는 이것과도 비슷하네…

그럼 이건 그렇다 치고 왜 음을 통해 해석을 했나 알아보자.
부도지에서는 음(音)이 우주 삼라만상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을 했는데 그 의도는 무엇인가?…

음이란 파장이다. 율과 여에서 율이란 상승파장 즉 오행에서는 상생의 힘을 말하는 것이고 여라는 것은 하강파장 즉 오행에서는 상극의 힘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물의 양적인 부분에서는 이들이 팽창과 수축을 통하여 생로병사(生老病死)를 겪으면서 변화를 하나 이들의 내면 즉 음적인 부분에서는 오욕칠정(五慾七情)에 영향을 받아 사물의 변화를 주도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이 땅에서 나는 지유를 먹으면서, 실달성과 허달성의 가운데서 물질세계와 정신세계의 중간에 서서 육체를 가진 인간의 형상과 신성을 동시에 가지고 창조에 동참을 하니 이는 기독교의 에덴동산이요, 그리스신화의 황금의 시대 였다.

이렇게 만상을 갖춰 놓으니 비로서 역수가 시작되고 인류가 시작이 있을 수가 있는 것이다.


제 2장 : 부도(不渡)의 시대

第五章

백소씨족(白巢氏族)의 지소(支巢)씨가, 여러 사람과 함께 젖을 마시려고 유천(乳泉)에 갔는데, 사람은 많고 샘은 작으므로, 여러 사람에게 양보하고, 자기는 마시지 못하였다. 이렇게 하기를 다섯 차례나 되었다. 곧 돌아와 소(巢)에 오르니, 배가 고파 어지러워 쓰러졌다. 귀에는 희미한 소리가 울렸다. 오미(五味)를 맛보니, 바로 소(巢)의 난간의 넝쿨에 달린 포도열매였다. 일어나 펄쩍 뛰었다. 그 독력(毒力)의 피해 때문이었다. 곧 소(巢)의 난간에서 내려와 걸으면서 노래하기를.
[넓고도 크구나 천지여!
내 기운이 능가한다.
이 어찌 도(道)인가!
포도의 힘이로다.] 라고 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다 지소씨의 말을 의심하였다. 지소씨가 참으로 좋다고 하므로, 여러 사람들이 신기하게 생각하고, 포도를 많이 먹었다, 과연 그 말과 같았다. 이에 제족이 포도를 많이 먹었다.

白巢氏之族 支巢氏ㅣ與者人으로 往飮乳泉할새 人多泉少어늘 讓於諸人하고 自不得飮而如是者五次라. 乃歸而登巢하야 遂發飢惑而眩倒하니 耳嗚迷聲하야 呑嘗五味하니 卽巢欄之蔓籬萄實이라. 起而偸躍하니 此被其毒力故也라. 乃降巢闊步而歌曰浩蕩兮天地여 我氣兮凌駕로다. 是何道兮요 萄實之力이로다. 衆皆疑之하니 支巢氏曰眞佳라하거늘 諸人이 奇而食之하니果若其言이라.於是에 諸族之食萄實者多러라.

第六章

백소씨(白巢氏)의 사람들이 듣고 크게 놀라, 곧 수찰(守察)을 금지하니 이는 또 금지하지 아니하되, 스스로 금지하는, 자재율(自在律)을 파기하는 것이었다. 이 때에 열매를 먹는 습관과 수찰을 금지하는 법이 시작되니, 마고가 성문을 닫고 수운(水雲)의 위에 덮혀 있는 실달대성의 기운을 거두어버렸다. 열매를 먹고 사는 사람들은 모두 이(齒)가 생겼으며, 그 침(唾)은 뱀의 독(毒)과 같이 되어 버렸다. 이는 강제로 다른 생명을 먹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수찰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눈이 밝아져서, 보기를 올빼미 같이 하니, 이는 사사로이 공률(公律)을 훔쳐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까닭으로, 사람들의 혈육이 탁(濁)하게 되고, 심기(心氣)가 혹독하여져서, 마침내 천성을 잃게 되었다. 귀에 있던 오금(烏金)이 변하여 토사(兎沙)가 되므로, 끝내는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발은 무겁고, 땅은 단단하여, 걷되 뛸 수가 없었으며, 태정(胎精)이 불순하여, 짐승처럼 생긴 사람을 많이 낳게 하였다. 명기(命期)가 조숙(早熟)하여, 그 죽음이 천화(遷化)하지 못하고 썩게 되었으니, 이는 생명의 수(數)가 얽혀 미혹(迷惑)하게 되고,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白巢氏之諸人이 聞而大驚하야 乃禁止守祭하니 此又破不禁自禁之自在律者也라. 此時에 食實之習과 禁祭之法이 始하니 麻姑閉門撤冪이러라. 已矣오 食實成慣者ㅣ皆生齒하야 唾如蛇毒하니 此는 强呑他生故也오 設禁守祭者ㅣ皆眼明하야 視似치目하니 此는 私 公律故也라. 以故로 諸人之血肉이 化하고 心氣ㅣ酷變하야 遂失凡天之性이라. 耳之烏金이 化作兎沙하야 終爲天聲하고 足重地固하야 步不能跳하며 胎精不純하야 多生獸相이라. 命期早熟하야 其終이 不能遷化而 하니 此는 生命之數ㅣ 惑 縮故也라.

第七章

이에 사람(人世)들이 원망하고 타박하니, 지소씨가 크게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져서, 권속(眷屬)을 이끌고 성을 나가, 멀리 가서 숨어 버렸다. 또 포도의 열매를 먹은 자와, 수찰을 하지 아니한 자도, 역시 모두 성을 나가, 이곳 저곳으로 흩어져 가니, 황궁(黃穹)씨가 그들의 정상을 불쌍하게 여겨 고별(告別)하여 말하기를, [여러분의 미혹(迷惑)함이 심대(甚大)하여 성상(性相)이 변이(變異)한 고로 어찌할 수 없이 성중(城中)에서 같이 살 수가 없게 되었오. 그러나, 스스로 수증(修證)하기를 열심히 하여, 미혹함을 깨끗이 씻어, 남김이 없으면, 자연히 복본(復本) 할 것이니, 노력하고 노력하시오.]하였다. 이 때에 기(氣)와 토(土)가 서로 마주치어, 시절(時節)을 만드는 광선(光線)이, 한 쪽에만 생기므로, 차고 어두웠으며, 수(水)와 화(火)가 조화를 잃으므로, 핏기 있는 모든 것들이 시기하는 마음을 품으니, 이는, 빛을 거둬들여서 비추어 주지 아니하고, 성문이 닫혀 있어 들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於時에 人世ㅣ怨咎하니 支巢氏ㅣ大恥顔赤하야 率眷出城하야 遠出而隱이라. 且氣慣食萄實者와 設禁守祭者ㅣ亦皆出城하야 去各地하니 黃弓氏ㅣ哀憫彼等之情狀하야 乃告別曰 諸人之惑量이 甚大하야 性相變異故로 不得同居於城中이라. 然이나 自勉修證하야 淸濟惑量而無餘則自然復本하리니 勉之勉之하라. 是時에 氣土相値하야 時節之光이 偏生冷暗하고 水火失調하야 血氣之類ㅣ皆懷猜忌하니 此는 冪光이 卷撤하야 不爲反照하고 城門이 閉隔하야 不得聽聞故也라.

第八章

더구나 성을 떠난 사람들 가운데 전날의 잘못을 뉘우친 사람들이, 성 밖에 이르러, 직접 복본(復本)을 하려고 하니, 이는 복본에 때가 있음을 모르는 까닭이었다. 곧 젖샘을 얻고자 하여, 성곽의 밑을 파해치니, 성터(城址)가 파손되어 샘의 근원이 사방으로 흘러 내렸다. 그러나, 곧 단단한 흙으로 변하여 마실 수가 없었다. 그러한 까닭으로 성 안에 마침내 젖이 마르니 모든 사람들이 동요하여, 풀과 과일을 다투어 취하므로, 혼탁(混濁)이 지극하여, 청정(淸淨)을 보관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황궁(黃穹)씨가 모든 사람들 가운데 어른이었으므로, 곧 백모(白茅)를 묶어 마고(麻姑)의 앞에 사죄하여, 오미(五味)의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고, 복본할 것을 서약하였다. 물러나와 제족(諸族)에게 고하기를 [오미의 재앙이 꺼꾸로 밀려오니, 이는 성을 나간 사람들이 이도(理道)를 알지 못하고, 다만 혹량(惑量)이 불어 났기 때문이다. 청정(淸淨)은 이미 없어지고, 대성(大城)이 장차 위험하게 되었으니, 앞으로 이를 어찌할 것인가.]하였다. 이 때에 천인(天人)들이 분거(分居)하기로 뜻을 정하고 대성을 완전하게 본전하고자 하므로, 황궁씨가 곧 천부(天符)를 신표(信標)로 나누어 주고, 칡을 캐서 식량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 사방에 분거할 것을 명령하였다. 이에 청궁(靑穹)씨는 권속(眷屬)을 이끌고 동쪽 사이의 문을 나가 운해주(雲海洲)로 가고, 백소(白巢)씨는 권속을 이끌고 서쪽 사이의 문을 나가 월식주(月息洲)로 가고, 흑소(黑巢)씨는 권속을 이끌고 남쪽 사이의 문을 나가 성생주(星生洲)로 가고, 황궁씨는 권속을 이끌고 북쪽 사이의 문을 나가 천산주(天山洲)로 가니, 천산주는 매우 춥고, 매우 위험한 땅이었다. 이는 황궁씨가 스스로 떠나 복본(復本)의 고통을 이겨내고자 하는 맹세였다.

已矣오. 出城諸人中悔悟前非者ㅣ還到城外하야 直求復本하니 此未知有復本之時所故也라. 乃欲得乳泉하야 掘鑿城廓하니 城址破損하야 泉源이 流出四方이라. 然이나 卽化固土하야 不能飮철이라. 以故로 城內에 遂乳渴하니 諸人이 動搖하야 爭取草果하니 混濁至極하야 難保淸淨이라. 黃穹氏ㅣ爲諸人之長故로 乃束身白茅하고 謝於麻故之前하야 自負五味之責하여 立誓復本之約이러라. 退而告諸族曰五味之禍ㅣ反潮逆來하니 此出城諸人이 不知理道하고 徒增惑量故也라. 淸淨已破하고 大城將危하니 此將奈何오. 是時에 諸天人이 意決分居하야 欲保大城於完全하니 黃穹氏ㅣ乃分給天符爲信하고 敎授採葛爲量하야 命分居四方이라. 於時에 靑穹氏ㅣ率眷出東間之門하야 去雲海洲하고 白巢氏ㅣ率眷出西間之門하야 去月息洲하고 黑巢氏ㅣ率眷出南間之門하야 去星生洲하고 黃穹氏ㅣ率眷出北間之門하야 去天山洲하니 天山洲는 大寒大險之地라. 此는 黃穹氏ㅣ自進 難하야 忍苦復本之 盟誓러라.

第九章

분거제족(分居諸族)이 각 주(洲)에 이르니, 어느덧 천년이 지났다. 옛날에 먼저 성을 나간 사람들의 자손이 각지(各地)에 잡거(雜居)하여, 그 세력이 자못 강성하였다. 그렇기는 하나 거의가 그 근본을 잃고, 성질이 사나와져서, 새로 온 분거족을 보면, 무리를 지어 추격하여 그들을 해하였다. 분거족이 이미 정주(定注)하니, 바다와 산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내왕이 거의 없었다. 이에 마고가 궁희와 소희와 더불어 대성을 보수하여, 천수(天水)를 부어 성내(城內)를 청소하고, 대성(大城)을 허달성(虛達城)의 위로 옮겨버렸다. 이 때에 청소를 한 물이 동과 서에 크게 넘쳐 운해주의 땅을 크게 부수고, 월식주의 사람을 많이 죽게 하였다. 이로부터 지계(地界)의 중심(重心)이 변하여, 역수(曆數)가 차이가 생기니, 처음으로 삭(朔)과 판(?)의 현상이 있었다.

分居諸族이 繞倒各洲하니 於焉千年이라. 昔世出城諸人之裔ㅣ難居各地하야 其勢甚盛이라. 然이나 殆忘根本하고 性化猛獰하야 見新來分居之族則作群追跡而害之러라. 諸族이 已定住하니 海阻山隔하야 來往이 殆絶이라. 於時에 麻故與二姬로 修補大城하고 注入天水하야 淸掃城內하고 移大城於虛達之上이러라. 是時에 淸掃之水ㅣ大漲於東西하야 大破雲海之地하고 多滅月息之人이라. 自此로 世界之重이 變化하야 曆數生差하니 始有朔?之象이라.

第十章

황궁씨가 천산주에 도착하여, 해혹(解惑)하여 복본(復本)할 것을 서약하고, 무리에게 수증(修證)하는 일에 근면하도록 고하였다. 곧 장자(長子) 유인(有因)씨에게 명하여, 인세(人世)의 일을 밝히게 하고, 차자(此子) 와 삼자로 하여금 모든 주(洲)를 순행(巡行)하게 하였다. 황궁씨가 곧 천산(天山)에 들어가 돌이 되어, 길게 조음(調音)을 울려, 인세의 혹량을 남김 없이 없앨 것을 도모하고, 기어이 대성 회복의 서약을 성취하였다. 이에 유인씨가 천부삼인(天符三印)을 이어 받으니, 이것은 곧 천지본음(天地本音)의 상(象)으로, 그것은 진실로 근본이 하나임을 알게 하는 것이었다. 유인씨가 사람들이 추위에 떨고, 밤에는 어둠에 시달리는 것을 불쌍하게 여겨, 나무를 뚫어서 마찰을 시켜 불을 일으켜서 밝게 비춰주고, 몸을 따뜻하게 하고, 또 음식물을 익혀서 먹는 법을 가르치니, 모든 사람들이 대단히 기뻐하였다. 유인씨가 천년을 지내고 나서, 아들 한인(桓因)씨에게 천부를 전하고 곧 산으로 들어가 계불을 전수(專修)하며 나오지 아니하였다.
환인씨가 천부삼인을 이어받아 인세를 증리(證理)하는 일을 크게 밝히니, 이에 햇빛이 고르게 비추고, 기후가 순조로와 생물들이 거의 안도함을 얻게 되었으며, 사람들의 괴상한 모습이 점점 본래의 모습을 찾게 되었다. 이는 3세(황궁, 유인, 환인)가 수증하기 삼천년에 그 공력이 거의 없어질만큼 써버렸기 때문이었다.

黃穹氏ㅣ到天山洲하야 誓解惑復本之約하고 告衆勸勉修證之業이라. 乃命長子有因氏하야 使明人世之事하고 使次子三子로 巡行諸洲러라. 黃穹氏乃入天山而化石하야 長嗚調音하야 以圖人世惑量之除盡無餘하고 期必大城恢復之誓約成就러라. 於是에 有因氏ㅣ繼受天符三印하니 此卽天地本音之象而使知其眞一根本者也라. 有因氏ㅣ哀憫諸人之寒冷夜暗하야 鑽燧發火하야 照明溫軀하고 又敎火食하니 諸人이 大悅이라. 有因氏千年에 傳天符於子桓因氏하고 乃入山하야 專修契불不出이라. 桓因氏ㅣ繼受天符三印하야 大明人世證理之事하니 於是에 日光均照하고 氣侯順常하야 血氣之類ㅣ庶得安堵하고 人相之怪ㅣ稍得本能하니 此는 三世修證三千年에 其功力이 庶幾資於不 者也라.


제 3 부 : 부도(符都)의 시대

내가 부도지를 보면서 가장 많이 고민을 한 것은 과연 이것이 어느 시대냐는 것이다.
부도지를 읽어 보면 거의가 인물 중심으로 나와 있다.
그래서 우선 몇 가지 알고 있는 사실을 중심으로 시대를 분류 하였다.
일단 전체의 족보를 보면
이 뒤에서도 보면 마고가 궁희와 소희를 낳고 이들이 세상의 창조주로 조화를 담당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들이 4명의 천인을 낳고, 다시 8명의 천인을 낳는 것으로 하여 이들이 총 12명의 천인을 낳는다.

앞에서 보면 [천인(天人)들이 분거(分居)하기로 뜻을 정하고 대성을 완전하게 보전하고자 하므로…]라는 대목이 나온다 환국이 총 12개의 연방국가 이고 이들은 12명이다.
또한 환국의 역사를 보면 삼성기에서 63,182년 또는 3,301년이라 했는데 부도지 10장에 보면 황궁씨, 유인씨, 환인씨가 각기 1,000년을 다스렸다 했으니 합이 3,000년이니 환국의 역사 3,301년과 유사하다.
뒤에 보면 임검씨때는 시대적 배경이 중국의 요순 때이니 이는 단군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그럼 환웅씨는 자연히 배달국의 환웅이 된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황궁씨다, 유인씨다 하는 것은 특정한 인물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몇몇 학자들에 의하면 환인이란 특정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환이란 밝다는 뜻이고 인이란 님이란 존칭에 해당하는 이두식 표현이라 한다.
이렇게 놓고 봤을 때 마고성시대는 환국의 역사 63,182년 중 3,301년을 뺀 나머지의 기간을 말하는 것으로 판단이 된다.
몇몇 상고시대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50,000년에서 60,000년 전에 이미 초 고대문명이 있었을 것이라는 학설을 내 놓기도 하니 그것이 이 마고성의 시대가 아닌가 한다.
또 신의 지문이라는 책에서 보면 약 1만년 전에 지구에 큰 변혁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
9장에서 보면 마고가 마고성을 청소하면서 큰 변혁이 있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때가 환국으로 보면 시기적으로 일치 하는 것으로 보인다.

제 4 부 : 오미(五味)의 화(禍)가 말하는 의미는..

부도지에서 오미의 화이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왜 많고 많은 것 중에서 하필이면 포도를 먹었을까?
성경에서는 사과(선악과)를 먹었다는데 이 차이점은 뭘까?
왜 이것 때문에 마고성에서 나와야 했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야 했을까?
땅에서 솟아나는 지유를 먹었다 함은 힘들여 먹을 것을 탐할 필요도 없었고 먹기 위해서 일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의식주 문제로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기에 노동이 없었고 욕망이 없었다.
이를 그리스신화에서는 황금의 시대로 말하였고 성경에서는 에덴동산, 우리 신화에서는 마고성 시대로 말하였다.
포도(사과_성경)를 먹었다 함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맛을 알게 되었고 식욕에 대한 욕망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많은 학자들은 식욕과 성욕을 같은 개념으로 본다.
결국 식욕과 성욕을 중심으로 성취욕, 명예욕, 인정에 대한 욕구 등 각종 욕망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포도에 달린 이 수많은 알갱이가 하나에서 엮어가는 수많은 욕망을 상징화 시킨 것이다.
결국 이 욕망에 의해 관념(선악과)이 생겨나고 이 관념으로 인해 여러 가지 피해의식이 생겨나고 결국 본성이 가려져 신성을 잃어 버리게 된 것이다.

마고성시대는 욕망이 없는 본성만이 있는 시대 였기에 법이라는 것이 필요 없었다고 본다.
그러나 백소씨족에 의해 오미의 난이 일어나게 되고 결국 그들은 마고성을 나왔으나 결국 법이 없었던 관계로 욕망의 세계에서 살다가 일부 인원이 속은 놔두고 껍질만을 가지고 섣불리 마고성(깨닮음)시대로 환원을 하려 했다가 결국 전체에게 피해를 입히게 된다.
이에 황궁씨는 어쩔 수 없이 욕망의 시대로 나왔으나 언젠가는 다시 본성을 찾아 마고성을 복본(復本)하려는 사명을 띄게 된다.
그래서 백소씨의 예를 상기하여 법을 세우고 이 법으로써 백성을 이끌게 되는 것이다.
이 법과 하나가 되어 생활한 시대가 고열가단군시대 까지다.
삼일신고를 통해 지감 조식 금촉하여 본성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제 5 부 : 한국(桓國)시대
한국(桓國)은 시베리아(사백력, 斯白力) 하늘 밑 바이칼 호수의 동쪽으로 흐르는 흑룡강(黑龍江, 龍江, 天河, 天海)을 중심으로 남북이 5만리요, 동서가 2만리의 거대한 제국이다. 한국(桓國)의 한이란 밝다는 말이다.
한국은 7대 한인(桓因)이 3,301년 동안 나라를 이뤘다.


II 교화(敎化)의 시대

교화(敎化)의 시대….
교화의 시대란 마고성에서 나온이후의 시대를 말한다.
오미의 화 이후 많은 혼란기가 있다.
이때 황궁씨는 준비가 되지 않았던 백소씨의 일족 일부와 지소씨의 일족이 세상에 나왔다가 적응치 못하고그 법을 잃어 버리는 모습을 보고 법을 보존키 위해서는 다시말해 마고로의 복본을 위해서는 사람들을 흩어지지 않게 묶어 줄 수 있는 법의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이때 처음으로 천부삼인이라는 말이 나온다. 바로 본성을 가리는 욕망을 제어 해야 다시 마고성(본성)으로의 복본이 가능함을 알기에 천부삼인의 가르침을 내려 바른 길로 인도하고 스스로의 모범을 보였다.
당시의 사람들은 이 가르침을 쫗아 다시 마고로의 복본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이 시대를 교화의 시대라 한다.
교화의 시대에는 크게 세부분으로 나뉜다.
한국(桓國) 천손족의 시대, 배달국, 조선…
처음 마고성에서 나온 이들을 지손족(당시의 원시 부락)의 눈으로 보면 너무나 신령스럽고 밝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을 천인이라 불렀고 이들을 가르켜 한님(桓因), 즉 하느님이라 불렀으며 한님이 사는 나라라 해서 한국이라 했다.
배달국은 천손족과 지손족이 결합한 최초의 국가이다.
한(桓)이란 하늘을 말하는 것이고 웅(雄)이란 땅을 말하는 것이니 한웅(桓雄)이란 천손족과 지손족을 아우르는 말 일것이다.
이때를 최초로 하늘(천손족)을 열어 땅(지손족)을 받아 들였다 하여 개천(開天)이라 하는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최초로 지손족중에 왕이 출현을 하니 이가 무리들 중에 왕이라는 뜻에서 임검(壬儉)이라 하였고 이가 바로 단군왕검이시다.
지손족이 하늘로부터 나라를 물려 받아 세웠다 하여 하늘이 주신 땅이라 하여 ‘쥬신’이라 불렀고 ‘쥬신’의 이두식 표기가 조선(朝鮮)이다.
중국 요와 순의 오행의 화로 인해 조선이 문화 침투를 당하여 42대 단군이후로는 지방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니 결국 47대 단군 고열가단군께서 부도의 법을 닫고 폐관을 하기에 이른다.
이때 이후가 치화(治化)의 시대 이니, 치화의 시대 앞 약 7천년에 이르는 기간을 교화의 시대라 한다.


제 3 장 : 배달국 시대

第十一章

환인씨의 아들 환웅씨는 태여날 때부터 큰 뜻을 가지고 있었다. 천부 삼인을 계승하여, 수계제불 (修계除불) 하였다. 천웅(天熊)의 도를 수립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그 유래한 바를 알게 하였다. 어느덧 인세(人世)가 의식(衣食)의 일(業)에만 편중하므로, 환웅씨는 무여율법(無餘律法) 조(條)를 제정하여, 환부(鰥夫)로 하여금 조절하게 하였다. 1조는, 사람의 행적(行蹟)은, 때때로 깨끗하게 하여, 모르는 사이에 생귀(生鬼)가 되지 않게 하고 번거롭게 막혀, 마귀(魔鬼)가 되지 않도록 하여, 인세로 하여금, 통명무여일장(通明無餘一障)하게 하라. 2조는, 사람의 취적(聚積)은, 죽은 뒤에 공을 제시하여, 생귀의 더러움을 말하지 않게 하고, 함부로 허비하여, 마귀가 되지 않도록 하여, 인세로 하여금, 보흡무여일감(普洽無餘一憾)하게 하라. 3조는, 고집이 세고 사혹(邪惑)한 자는 광야(曠野)에 귀향을 보내, 때때로 그 사옥함을 씻게 하여, 사기(邪氣)로 하여금, 무여어세상(無餘於世上)하게 하라. 4조는, 죄를 크게 범한 자는 섬도(暹島)에 유배시켜 죽은 뒤에 그 시체를 태워서, 죄집(罪集)으로 하여금, 무여어지상(無餘於地上)하게 하라 였다. 또 궁실(宮室)을 짓고, 배와 차(車)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거주(居住)하고, 여행하는 법을 가르쳤다.
이에 환웅씨가 바다에 배를 띄워 시승(始承)하여 사해(四海)를 순방하니, 천부를 조증(照證)하여 수신(修信)하고, 제족의 소식을 소통하여 근본을 잊지 않을 것을 호소하고, 궁실을 짓고, 배와 차를 만들고, 화식(火食)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었다. 환웅씨가 돌아와 8음2문(八音二文)을 수학하고, 역법(曆法)을 정하고 의약술(醫藥術)을 수업하며, 천문(天文)과 지리(地理)를 저술하니, 홍익인세(弘益人世)였다. 이는, 세대는 멀어지고, 법은 해이하여져서, 모든 사람들이 몰래 사단(詐端)을 모색하는 일이 늘어나기 때문에, 일용(日用)하는 사물 사이에서, 근본의 도를 보전하여 분명하게 밝히기 위한 것이었다. 이로부터 비로소 학문을 하는 풍조가 일어나니, 인성(人性)이 혼매(昏昧)하여, 배우지 않고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桓因氏之子桓雄氏ㅣ生而有大志하야 繼承天符三印하고 修계除불하고 立天雄之道하야 使人知其所由러라. 於焉人世ㅣ偏重於衣食之業하니 桓雄氏ㅣ制無餘律法四條하야 使鰥夫로 調節하니 一曰人之行蹟은 時時淸濟하야 勿使暗結生鬼하며 煩濟化魔하야 使人世로 通明無餘一障하라. 二曰人之聚積은 死後堤功하야 勿使陳垢生鬼하며 濫費化魔하야 使人世로 普洽無餘一憾하라. 三曰頑 邪惑者는 謫居於曠野하야 時時被其行하야 使邪氣로 無餘於世上하라. 四曰大犯罪過者는 流居於暹島하야 死後焚其尸하야 使罪集으로 無餘於地上하라. 又作宮室舟車하야 敎人居旅러라. 於是에 桓雄氏ㅣ始乘舟浮海할새 照證天符修信하고 疏通諸族之消息하며 訴言根本之不忘하고 敎宮室舟車火食之法이너라. 桓雄氏ㅣ歸而修八音二文하고 定曆修醫藥하며 述天文地理하니 弘益人世라. 此는 世遠法弛하야 諸人之暗취摸 이 增詐端故로 欲保根本之道於日 用事物之間而使昭然也라. 自是로 始興修學之風하니 人性昏昧하야 不學則不知故也라.


제 6 부 : 환웅씨 시대.

부도지에서는 환웅씨에 관해서는 거의 나온 것이 없다.
그래서 한단고기의 내용을 바탕으로 여기에 적어 보겠다.

한인의 서자 환웅이 있어 무리 3,000을 이끌고 태백산으로 내려와 신시(神市)를 열었다 한다.
배달국은 9개의 나라로 이루워져 있고 18대 환웅이 1565년간 재위하였다.
한단고기에서 ‘삼성기’에 보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뒤에 한웅씨(桓雄氏)가 계승하여 일어났다. 천신(天神)의 뜻을 받들어 백산(白山)과 흑수(黑水) 사이에 내려 왔다. 자정(子井)과 여정(女井)을 천평(天坪)에 마련하고 청구(靑邱)에 정지(井地)를 정했다. 천부인(天符印)을 지니고 다섯가지 일을 주관하였으며, 세상에 머무르며 인간을 교화하고 크게 이롭게 하였다. 신시(神市)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배달(倍達)이라 하였다. (…)]


제 4 장 : 임검(壬儉)씨 시대(조선시대)

第十二章

환웅씨가 임검(壬儉)씨를 낳았다. 때에 사해의 제족(諸族)이 천부의 이치를 강(講)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미혹(迷惑)속에 빠져, 세상이 고통스러웠다. 임검씨가 천하에 깊은 우려를 품고, 천웅의 도(天雄之道)를 닦아, 계불의 의식을 행하여, 천부삼인을 이어받았다. 갈고, 심고, 누에치고, 칡을 먹고, 그릇을 굽는 법을 가르치고, 교역(交易)하고, 결혼하고, 족보를 만드는 제도를 공포하였다. 임검씨가 뿌리를 먹고, 이슬을 마시므로, 몸에는 털이 길게 나가지고, 사해를 널리 돌아다니며, 제족을 차례로 방문 하였다. 백년사이에 가지 않는 곳이 없었다. 천부를 조증(照證)하여 수신(修信)하고, 해혹복본(解惑復本) 할 것을 맹서하며, 부도(符都)를 건설할 것을 약속하니, 이는 지역은 멀고 소식은 끊어져, 제족의 언어와 풍속이 점차로 변하여 서로 다르게 되었기 때문에, 함께 모여 협화(協和)하는 자리에서, 천부의 이치를 강(講)하여 분명하게 알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은 후일에 회강(會講)의 실마리가 되니, 인사가 번거롭고 바빠, 강하지 않으면 잊어버리기 때문이었다.

桓雄氏生壬儉氏하니 時에 四海諸族이 不講天符之理하고 自沒於迷惑之中하야 人世因苦라. 壬儉氏懷憂於天下하고 修天雄之道하며 行계불之儀하야 繼受天符三印이라. 敎耕稼蠶葛陶 之法하고 布交易稼 錄之制러라. 壬儉氏ㅣ啖根吸露하고 身生毛 하야 遍踏四海하야 歷訪諸族하니 百年之間에 無所不往이라. 照證天符修信하고 盟解惑復本之誓하며 定符都建設之約하니 此는 地遠信絶하야 諸族之言語風俗이 漸變相異故로 俗講天符地理於會同協和之
而使明之也라. 是爲後日會講之緖하니 人事煩忙하야 不講則忘失故也라.

第十三章

임검(壬儉)씨가 돌아와 부도(符都)를 건설할 땅을 택하였다. 즉 동북의 자방(磁方)이었다. 이는 2와 6이 교감(交感)하는 핵심지역이요, 4와 8이 상생(相生)하는 결과의 땅이었다. 밝은 산과 맑은 물이 만리에 뻗어 있고, 바다와 육지가 서로 통하여 십방으로 갈리어 나가니, 즉 9와 1의 끝과 시작이 다하지 않는 터전이었다. 삼근영초(三根靈草)와 오엽서실(五葉瑞實)과, 칠색보옥(七色寶玉)이 금강(金剛)의 심장부에 뿌리를 내려, 전 지역에 두루 가득하니, 이는 1과 3과 5와 7의 자삭(磁朔)의 정(精)이 모여, 바야흐로 물체를 만드는 복된 땅이었다. 곧 태백산 밝은 땅의 정상에 천부단(天符壇)을 짓고 사방에 보단(堡壇)을 설치 하였다. 보단의 사이에는 각각 세 겹의 도량길로 통하게 하였다. 도랑길의 사이는 천 리였으며, 도랑길의 좌우에 각각 관문을 설치하여 지키게 하였다. 이는 마고본성(麻故本城)에서 그 법을 취한 것이었다. 부도의 하부를 나눠 마을을 만들었다. 삼해(三海)의 주위에 둥그렇게 못에 잠기었다. 사진(四津)과 사포(四浦)가 천 리 간격으로 연결되어, 동서로 줄을 지어 둘러쌌다. 진(津)과 포(浦)사이에 다시 6부를 설치 하였다. 6부에는 제족(諸族)이 살았다. 부도가 이미 이루어지니, 웅려(雄麗)하고 광명하여 사해를 총화하기에 충분하였으며, 제족의 생맥(生脈)이었다.

壬儉氏ㅣ歸而擇符都建設之하니 卽東北之磁方也라. 此는 二六交感懷核之域이오 四八相生潔果之地라. 明山麗水ㅣ連선萬里하고 海陸通涉이 派達十方하니 卽九一終始不 之其也라. 三根靈草와 五葉瑞實과 七色寶玉이 托根於金剛之臟하야 遍滿於全域하니 此一三五七磁朔之精이 會方成物而順吉者也라. 乃築天符壇於太白明地之頭하고 設保壇於四方이라. 保壇之間에 各通三 道溝하니 其間이 千里也오 道溝左右에 各設守關하니 此取法於麻故之本城이라. 劃都坊於下部之休하고 圖涵澤於三海之周하니 四律四浦ㅣ連隔千里하야 環列於東西라. 律浦之間에 又設六部하니 此爲諸族之率居也라. 符都 成하니 雄麗光明하여 足爲四海之總和요 諸族之生脈

第十四章

이에 황궁씨의 후예 6만이 이주하여 지키고, 곧 나무를 베어 뗏목 8만을 만들어서, 신부(信符)를 새겨, 천지(天池)의 물에 흘려 보내, 사해의 제족을 초청하였다. 제족이 그 신부가 새겨진 뗏목을 얻어서 보고, 차례로 모여들어, 박달나무 숲에 신시를 크게 열고, 수계정심(修?淨心)하여, 천상(天象)을 살핀 후, 마고의 계보(系譜)를 닦아 그 족속(族屬)을 밝히고, 천부의 음에 준하여 그 어문(語文)을 정리 하였다. 또 북진(北辰)과 칠요(七耀)의 위치를 정하여 반석의 위에서 속죄의 희생물을 구워 전(奠)을 올리고, 모여서 노래하며 천웅(天雄)의 악(樂)을 연주하였다. 제족이 방장산(方丈山) 방호의 굴(方壺之堀)에서 칠보의 옥을 채굴하여 천부를 새기고 그것을 방장해인(方丈海印)이라 하여 칠난(七難)을 없애고 돌아갔다. 이로부터 매 10년마다 반듯이 신시를 여니, 이에 어문(語文)이 같아지고, 천하가 하나로 되어, 인세가 태화(太和)하였다. 인하여 바닷가에 성황(城隍)을 지어 천부에게 전을 올리고, 제족으로 하여금 머물러, 집을 지어 살게 하니, 그 뒤에 천년 사이에 성황이 전역에 널리 퍼졌다.

第十五章

또 예와 양(陽)이 교차하는 중심지에 조시(朝市)를 설치하고, 팔택(八澤)에 해시(海市)를 열어, 매년 10월에 조제(朝祭)를 행하니, 사해의 제족이 모두 지방 토산물을 바쳤다. 산악의 제족은 사슴과 양을 바치고, 해양 제족은 물고기와 조개를 바쳐 송축하기를
[고기와 양을 희생으로
조제에 공진하니,
오미의 피를 신선하게 하여,
창생의 재앙을 그치게 하네]하였다.
이를 가르켜 조선제(朝鮮祭)라 하였다. 이 때에 산악과 해양의 제족이 물고기와 육(肉)고기를 많이 먹으니, 교역하는 물건이 거개가 저린 어물과 조개와 가죽류이기 때문에 곧 희생제(犧牲祭)를 행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반성 하고, 공에 보답하게 하였다. 피에 손가락을 꽂아 생명을 성찰하고, 땅에 피를 부어 기른 공을 보답하니, 이는 물체가 대신 오미의 잘못을 보상하여, 재앙을 먿게 하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즉 육친고충의 고백이었다. 언제나 세제(歲祭) 때에는 물화(物貨)가 폭주 하므로 사 진과 사 포에 해시를 크게 열고, 몸을 깨끝하게 하여, 지리(地理)를 거울 삼아, 교역의 법을 시행하여, 그 값과 분량을 정하며, 물성(物性)의 근본을 분별하여 이용하는 법을 밝혔다. 또 부도 팔택의 모양을 본떠서 뭇을 파고, 곡수(曲水)의 사이에서 보새(報塞)를 지내고, 회연(會燕)하여 제물(濟物)하는 의식(儀式)을 행하였다. 제족이 봉래산 원교봉(圓嶠峯)에서 오서(五瑞)의 열매를 얻으니, 즉 잣나무 열매였다. 봉래 해송(海松)이라 하여, 은혜롭게 오행(五幸)을 얻고 돌아갔다. 이로부터 사해가 산업이 일어나서 교역이 왕성하게 되므로, 천하가 유족하였다.

第十六章

시(市)에 온 사람들은 영주(瀛州) 대여산(岱與山) 계곡에서 삼영근(三靈根)을 얻으니, 곧 인삼이었다. 그것을 영주 해삼이라 하였으며, 능히 삼덕(三德)을 보전하고 돌아갔다. 대개 인삼이 그 수격(數格)을 갖추어, 자삭방(磁朔方)에서 난 것은 반드시 장생하니 40세(歲)를 1기로 휴먼하고, 13기를 1삭(朔)으로 축정(蓄精)하고, 4삭을 경과하여 씨(子)를 맺어 화(化)하니, 이러한 것은 부도의 지역이 아니고는 얻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방삭초(方朔草)라 하니, 세상에서 불사약이라 하는 것이 이것이다. 그 혹 작은 뿌리라도 부도의 지역에서 생산되는 것은 모두 영효(靈?)가 있으므로, 시(市)에 온 사람들은 반드시 그것을 구하였다. 대저 삼근영초(三根靈草)의 인삼과, 오엽서실(五葉瑞實)의 잣과, 칠색보옥(七色寶玉)의 부인은 진실로 불암삼역(不咸三域)의 특산이요, 사해제족(四海諸族)의 천혜(天惠)였다.

제 7 부 : 임검(壬儉)씨 시대

여기서 임검씨란 그 시대적 배경이 요순임금의 시대 이므로 한배검 단군을 말하는 것 같다.
앞서 환국과 배달국에서의 임금은 천손족인 마고성의 후예였으나 한배검 단군께서는 웅족(熊族, 지손족)중 가장 세력이 강한 단국(檀國)의 후손으로 천손족에서 지손족으로 이어지는 첫임금인 것이다. 그렇기에 나라의 이름도 하늘(天, 천손족)이 주신국가라 하여 ‘조선(朝鮮)’이라 하였다.
또한 한배검께서는 조선의 전체의 행정구역을 3한(三韓, 三王)이 나눠, 한배검 자신은 진한(辰韓) 인 진임금(辰王)으로써 마한(馬韓)과 변한(卞韓)을 거느리고 있었다.

임검씨는 먼저 흩어져 있는 마고성의 여러 민족을 찾아 다니며 부도를 다시 건설 할 것을 약속하고 6만의 백성을 먼저삼신산으로 이주시켜 자리를 지키게 하고, 텟목 8만을 만들어 이주를 하여 박달나무숲에 신시를 여셨다. 이는 흩어진 마고성의 여러 민족을 모아 천부의 이치를 가르쳐 분명히 알게 하여 부도의 법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였다.

임검씨는 마고성을 모방하여 신시를 꾸미고 사방에 흩어진 민족들을 초청하였다.


III 치화(治化)의 시대

치화의 시대의 계기가 된 것은 [오행의 화]이나 이때 치화의 시대가 열리는 계기가 만들어 진 것이지 이때부터 치화의 시대는 아니다. 본격적인 치화의 시대는 47대 고열가단제의 폐관 이후로 봐야 할 것이다.

여기서부터 오행의 화에 대해 나오는데 부도지의 내용중 가장 많은 내용을 차지 할 정도로 중요한 내용이다.
오행의 화란 하늘에 대한 인간의 반란으로 인간의 욕망이 자연의 흐름을 바꿔 놓았고 결국 그것이 조선의 막을 내리며 부도의 법이 끊어 지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제 5 장 : 오행(五行)의 화(禍)

第十七章

이 때에 도요(陶堯)가 천산(天山)의 남쪽에서 일어났다. 일차로 출성(出城)한 사람들의 후예였다. 일찍이 제시(祭市)의 모임에 왕래하고, 서쪽 보(堡)의 간(干)에게서 도(道)를 배웠다. 그러나 원래 수(數)에 부지런하지 못하였다. 스스로 9수5중(九數五中)의 이치를 잘 알지 못하고, 중5(中五) 이외의 8은, 1이 즉 8이라고 생각하고, 내(內)로써 외(外)를 제어하는 이치라 하여, 오행(五行)의 법을 만들어 제왕의 도를 주창하므로, 소부(巢夫)와 허유(許由) 등이 심히 꾸짖고, 그것을 거절하였다. 요가 곧 관문 밖으로 나가, 무리를 모아 묘예(苗裔)를 쫓아냈다. 묘예는 황궁씨의 후예였으며, 그 땅은 유인(有因)씨의 고향이었다. 후대에 임검(壬儉)씨가 여러 사람을 이끌고 부도를 나갔기 때문에, 비어 있는 그 기회를 이용하여 그를 습격하니, 묘예가 마침내 동서북의 삼방(三方)으로 흩어졌다. 요가 곧 9주(九州)의 땅을 그어 나라를 만들고, 스스로 5중에 사는 제왕이라 칭하여, 당도(唐都)를 세워, 부도와 대립하였다. 때에 거북이 등에 지고 나왔다는 부문(負文)과, 명협(蓂莢)이 피고 지는 것을 보고, 신의 계시라 하여, 그것으로 인하여, 역(曆)을 만들고, 천부(天符)의 이치를 폐하여 부도(符都)의 역을 버리니, 이는 인세 두번째의 큰 변이었다.
第十八章

이에 임검씨가 그것을 심히 걱정하여, 유인씨(有因氏)의 후손 유호씨(有戶氏)의 부자로 하여금 환부(鰥夫)와 권사(權士)등 100여인을 인솔하고 가서 그를 깨우치도록 하였다. 요가 그들을 맞아, 명령에 복종을 하고, 공순하게 대접하여 하빈(河濱)에서 살게 하였다. 유호씨가 묵묵히 그 상황을 관찰하고, 스스로 사람들을 가르치며, 여러 번 그 거처를 옮겼다. 이보다 먼저 유호씨가 부도에 있을 때에 칡을 먹고 오미를 먹지 아니하였으므로, 키는 열 자요, 눈에서는 불빛이 번쩍였다. 임검씨보다 나이를 100여살이나 더 먹었으며,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직업(業)을 이어, 임검씨를 도와, 도를 행하고, 사람들을 가르쳤다. 이에 이르러 사자(使者)가 되어, 완미(頑迷)한 세상을 구제하니, 그가 하는 일에 어려움이 많았다. 때에 요가 유호씨의 아들 유순(有舜)의 사람됨을 보고, 마음 가운데 딴 뜻이 있어, 일을 맡기고, 도와 주며, 두 딸로 유혹하니, 순이 곧 미혹하여졌다. 유순이 일찍이 부도의 법을 행하는 환부가 되어, 마침내 (능력이) 미치지 못하여, 두 딸을 밀취(密娶)하고, 어리석게도 요에 붙어 협조하였다.

第十九章

이 때 유호씨가 수시로 경계를 하였으나, 순은 예, 예, 하고 대답만 하고는 고치지 않았다. 그는 끝내 요의 촉탁을 받아들여 현자를 찾아 죽이며, 묘족(苗族)을 정벌하였다. 유호씨가 마침내 참지 못하여 꾸짖고, 그를 토벌하니, 순은 하늘을 부르며 통곡하고, 요는 몸을 둘 땅이 없으므로, 순에게 양위하고, 자폐(自閉)하였다. 유호씨가 이르기를, 오미의 재앙이 끝나지 않았는데, 또 다시 오행(五行)의 화를 만들었으므로, 죄는 땅에 가득하고, 북두성은 하늘을 가리어, 수사(數事)가 많이 어그러져, 인세(人世)가 곤고(困苦)하여 졌다. 이는 불가불 바로잡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또 알지 못하고 범하는 자는 혹 용서하여 가르칠 수도 있으나, 알고 범하는 자는 비록 지친(至親)이라도 용서할 수가 없다 하고 곧 차자(次子) 유상(有象)에게 명하여 권사(勸士)를 이끌고 무리를 모아 죄를 알리고, 그를 치게 하니, 수년 동안 싸워서, 마침내 당도(唐都)를 혁파(革罷)하였다. 요는 유폐(幽閉) 중에서 죽고, 순은 창오(蒼梧)의 들에 도망하여, 도당(徒黨)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요의 무리 우(禹)가 순에게 아버지를 죽인 원한이 있으므로 이에 이르러, 그를 추격하여 죽여버렸다. 순의 두 처(妻)도 역시 강물에 투신하여 자결하였다. 우가 곧 정명(正命)으로 입공(立功)한다고 말하고, 상의 군사를 위로하고 돌아가므로 유호씨가 물러나서 우의 소행을 관찰하니, 이 때에 우가 도읍을 옮기고, 무리를 모아 방패와 창을 보수하고 유호씨에게 항거하여, 자칭 하왕(夏王)이라 하였다.

第二十章

우가 마침내 부도를 배반하고 도산(塗山)에 단(壇)을 설치하였다. 서남 제족을 정벌하여, 제후(諸候)라 하고, 도산에 모이게 하여, 조공을 받았다. 이는 부도 제시(符都際市)의 제도를 본받은 것이었으나, 폭돌(暴突)한 것이었다. 이에 천하가 시끄러워, 부도로 도망하여 오는 자가 많았다. 우가 곧 수륙(水陸)의 길을 차단하여, 부도와 연락을 끊고, 내왕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감히 부도를 공격하지는 못하였다. 이 때에 유호씨가 서벙에 살면서, 묘예(苗裔)를 수습하여, 소부와 허유가 사는 곳과 통하고, 서남 제족과 연락하니, 그 세력이 심히 왕성하여, 스스로 읍(邑)을 이루웠다. 유호가 곧 권사(權士)를 보내, 우에게 유시(諭示)하기를,
[요는 천수(天數)를 몰랐다. 땅을 쪼개서 천지를 제 멋대로 하였다. 기회를 틈타 독단(獨壇)을 만들고, 사사로이 개나 양을 기르기 위하여, 사람을 몰아낸 후, 자칭 제왕이 되어, 혼자서 처리 하였다. 세상은 토석(土石)이나 초목처럼 말이 없고, 천리(天理)는 거꾸러 흘러, 허망에 빠져버렸다. 이것은 거짓으로 천권(天權)을 훔쳐, 사욕의 횡포를 자행한 것이다. 제왕이 만약 천권을 대행하는 것이라면, 능히 일월(日月)을 개폐(開閉)하여, 만물을 조작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제왕이란 수의 요체(數諦)요, 사람이 거짓으로 칭하는 것이 아니다. 거짓으로 칭하면, 다만 사기와 허망의 나쁜 장난이 될 뿐이다. 사람의 일이란 증리(證理)요, 세상의 일이란 그 증리한 사람의 일을 밝히는 것이니, 이 이외에 다시 무엇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부도의 법은 천수의 이치를 명확하게 증명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그 본무(本務)를 수행하게 하고, 그 본복(本福)을 받게 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말하는 자와 듣는 자가 비록 선후는 있으나, 높고 낮음이 없으며, 주는 자와 받는 자는 비록 친숙하고 생소한 것은 있으나, 끌어들이고 몰아내고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사해가 평등하며, 제족(諸族)이 자행(自行)하는 것이다. 오직 그 오미(五味)의 죄책을 보속(報贖)하는 것과, 대성의 일(大成之業)을 회복하는 것은, 언제나 일인 희생의 주관아래 있는 것이요, 여러 사람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니, 이 일은 예로부터 세상 일(人世之事)에 섞이지 아니하였다. 황궁(黃窮)씨와 유인(有因)씨의 예가 바로 이것이다.

第二十一章

또 그 소위 오행(五行)이라는 것은, 천수(天數)의 이치에 이러한 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방위(方位)의 중앙 5는 교차(交叉)의 뜻이요, 변행(變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변하는 것은 1로부터 9까지 이므로, 5는 언제나 중앙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9가 윤회하여, 율(律)과 여(呂)가 서로 조화를 이룬 후에 만물이 생겨나는 것이니, 이는 기수(基數)를 이르는 것이요, 그 57이 크게 번지는 고리(大衍之環)에 이르면, 그 자리가 5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고, 또한 47이 있는 것이다. 또 그 순역(順逆) 생멸(生滅)의 윤멱(輪冪)은 4요, 5가 아니니, 즉 원수(原數)의 9는 불변수이기 때문이다. 또 윤멱이 한 번 끝나는 구간은 2X4=8 사이의 7이요, 5가아니다. 또 그 배성지물(配性之物)은 금(金)목(木)수(水)화(火)토(土)의 다섯 중에서 금(金)과 토(土)를 왜 따로 구별하는가. 그 약간의 차이 때문에 구별을 하고자 한다면, 기(氣)풍(風)초(草)석(石)따위는 어찌 같이 들지 않는가. 그러므로, 다 들자면, 수가 없는 것이요, 엄별해서 들자면, 금목수화 혹은 토목수화의 넷이요, 다섯이 되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그 물성(物性)을 어떤 이유로 수성(數性)에 짝지우는가, 수성지물(數性之物)은 그 원수가 9요, 5가 아니다. 그러므로 5행의 설은, 참으로 황당무괘한 말인 것이다. 이로써 인세를 증리(證理)하는 일을 무혹(誣惑)하여, 곧 천화(天禍)를 만드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것인가.

第二十二章

또 그 역제(曆制)는, 천수(天數)의 근본을 살피지 못하고, 거북이나 명협의 미물(微物)에서 근본을 취하였으니, 요는 또 무슨 속셈인가. 천지의 만물이 다 수에서 나와, 각각 수를 상징하고 있는데, 하필 거북과 명협 뿐이겠는가. 그러므로 모든 물사(物事)에, 각각 그 역(曆)이 있으니, 역이라는 것은 역사(歷史)다. 그러므로, 요의 역제는, 즉 거북과 명협의 역이요, 인간의 역이 아니니, 그것이, 인세(人世)와 불합(不合)하는 것은 진실로 당연한 것이다. 이런 까닭에 삼정(三正)을 번복하여, 구차스럽게 맞추고자 하였으나 얻지 못하여 마침내 하늘의 죄를 끌여들였다. 역(曆)이라는 것은, 인생증리(人生證理)의 기본이므로, 그 수는 몸소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역이 바르면, 천리(天理)와 인사(人事)가 증합(證合)하여 복이 되고, 역이 바르지 못하면, 천수에 어긋나 화가 되니, 이는 복은 이(理)가 존립(存立)하는데 있고, 이는 정증(正證)에 존립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역이 바르고 바르지 못한 것은, 인세 화복(禍福)의 발단이니, 감히 삼가 하지 않을 것인가. 옛날, 오미(五味)의 화(禍)가, 한사람의 미혹에서 나와서, 만대의 산사람(生靈)에게 미치고 있는데, 지금 또 다시 역의 화가, 장차 천세(天世)의 진리에 미치고자 하니, 두렵기만 하구나.

第二十三章

천도(天道)가 돌고 돌아, 종시(終始)가 있고, 종시가 또 돌아, 4단씩 겹쳐 나가, 다시 종시가 있다. 1 종시의 사이를 소력(小曆)이라 하고, 종시의 종시를 중력(中曆)이라 하고, 네 번 겹친 종시를 대력(大曆)이라 한다. 소력의 1회(回)를 사(祀)라 하니, 사에는 13기(期)가 있고, 1기에는 28일이 있으며, 다시 4요(曜)로 나뉜다. 1요에는 7일이 있고, 요가 끝나는 것을 복(服)이라 한다. 그러므로, 1사에 52요복이 있으니, 즉 364일이다. 이는 147성수(性數)요, 매 사의 시작에 대사(大祀)의 단(旦)이 있으니, 단과 1은 같기 때문에 합하여 365일이 되고, 3사의 반(半)에 대삭(大朔)의 판(?)이 있으니, 판은 사의 2분절이다. 이는 258법수(法數)요, 달이 긴 것이 1일과 같기 때문에, 제 4의 사는 366일이 된다. 10사의 반(半)에 대회(大晦)에 구가 있으니, 구는 시(時)의 근원이다. 300구가 1묘(?)가 되니, 묘는 구가 눈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이 9633묘를 지내서 각(刻), 분(分), 시(時)가 1일이 되니, 이는 369의 체수(體數)다. 이와 같이, 끝나고 또 시작하여, 차차 중력(中曆)과 대력(大曆)에 미쳐서, 이수(理數)가 곧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저 요의 이 세가지 잘못은, 허위(虛僞)의 욕망에서 나온 것이니, 어찌 가히 부도 실위(實爲)의 도에 비할 수가 있겠는가. 허위는, 안에서 이(理)가 불실하여, 마침내 멸망에 이르고, 실위는, 이(理)가, 나를 언제나 만족하게 하여, 스스로 함께 존립한다.

第二十四章

유호(有戶)씨가 이와 같이 단단히 타일러서, 제법(諸法)을 폐지하고, 부도로 돌아 올 것을 권하였으나, 우(禹)가 완강하게 듣지 아니하고, 반대로 위협이고, 모욕이라 하여, 곧 무리를 이끌고, 유호씨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수차 이기지 못하고, 마침내 모산(茅山) 진지(陣地)에서 죽었다. 이에 하중(夏衆)들이 비분하여, 죽기를 원하는 자가 수 만이였다. 이는 거의가 우와 함께 치수(治水)를 한 무리들이었다. 우의 아들 계(啓)가 이 대군을 이끌고, 유호씨의 읍(邑)으로 진격하여 오니, 유호씨의 군은 불과 수 천이었다. 그러나, 하군(夏軍)이 싸우면 반드시 패하여, 한번도 전적을 거양하지 못하였다. 계가 마침내 두려워서 퇴진하고, 다시 공격하지 못하자, 그 무리가 격양되었다. 이에 유호씨가 하중(夏衆)이 눈이 먼 것을 보고, 고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여, 장차 서남제족(西南諸族)을 가르치기 위하여, 그 무리를 이끌고 가니, 그 읍(邑)이 자연히 없어졌다.


제 8 부 : ‘오행(五行)의 화(禍)’가 주는 의미

부도의 법에서는 기(氣)화(火)수(水)토(土)라는 4대 원소로 만물이 구성이 되어 있는 것으로 본다.
이 4가지의 구성 요소가 오행 목(木)화(火)토(土) 금(金)수(水)의 5가지 구성 요소와 차이는 무엇일까?
부도지(符都誌)에서는 이 구절에서 상당히 많은 자리를 할당을 하여 설명을 하였다.
물론 상당부분은 내용에 대한 설명이긴 하지만 그만큼 중요하게 다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도지에 나오는 4대 원소는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면을 보충하며 완성으로 나가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남성과 여성, 아이와 어른, 밤과 낮과 같이 서로 상반되는 개념끼리 서로 조화를 이루며 만물을 이루는 개념이다.
이는 높고 낮음, 잘나고 못남, 귀함과 천함이 없이 모든 것에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고 그것이 서로 어울러져 조화를 이룰 때 완성을 향해 나갈 수 있는 개념이다.

실제 고대 우리나라의 국가는 완전평등을 실현한 공산주의 국가로 높고 낮음이나 귀천의 개념이 없는 완전한 평등 사회라 한다.
이는 우리의 음식문화에도 잘 나타나 있는데 외국의 경우 재료 본래의 맛을 살리거나 주된 맛 뒤에 첨가하여 맛이나 향을 첨가하거나 보조해 주는 형식인데 반하여. 우리의 음식은 여러 가지 재료가 어울어져 새로운 맛을 만드는 이른바 비빔밥으로 대표가 되는 음식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오행의 원리에서는 토가 중앙에서 다른 네가지 원소의 균형을 제어하는 형상으로,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고 통재하며, 희생을 받거나 희생을 하는 관계등으로 이루워져 있다.
이는 지도층의 절대 권력을 형상화 시킨 것으로 계급사회, 투쟁을 정당화 시킨 것이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수(水)는 화(火)를 이기며, 토(土)에게는 지며, 목(木)을 생(목을 위해 희생)하고, 금(金)의 희생을 바탕으로 생성이 된다.
목은 토(土)를 이기며, 금(金)에게는 지며, 화(火)를 생(화을 위해 희생)하고, 수(水)의 희생을 바탕으로 생성이 된다.
또한 토(土)는 중앙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고 관리하니 중국의 황제(皇帝)나 지배층을 형상화 하여 만들어진 개념이라 하겠다.

결국 모든 것이 하늘에서 나온 산물이며 만물이 서로의 부족한 면을 서로 메워주며 이들의 조화에 의해 세상이 만들어 진다는 이론이 서로 생하는 힘에 의해 생성이 되고 극하는 힘에 의해 통제되고 관리되어 폭주하는 것을 막아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이론으로 바뀌었다.

결국 이로 인해 지배자(상극하는 힘)와 피지배자로 나뉘어 권력에 대한 욕망에 의해 투쟁이 일어나니 오미의 화에 의해 생긴 관념에 오행의 화로 인한 투쟁의 힘이 보태져 세상을 더욱 혼란하게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제 9 부 : 부도의 역(曆)

부도의 역은 마야나 잉카의 역과 유사하다. 마야나 잉카는 태양을 중심으로 한 태양력을 사용을 한다.
우리민족도 역시 광명을 숭상하여 국가 이름도 밝음을 상징하는 환국이나 배달국이니 그들과 같은 태양력을 사용을 한다고 가정을 하고 이를 보는 것이 유사 할 것 같다.
서양 역시 태양력을 사용한다고 하나 자연의 주기에는 관계가 없이 1년이라는 단위에 날자를 끼어 맞춰 실지 자연의 주기와는 맞지 않는다.
우리의 역은 천부경의 원리에 따라 시작과 끝이 하나(시작과 끝의 주기로 여기서는 1년을 뜻한다.)이니 이것이 한번 돌아가는 것을 소력(小曆)이라 하고 소력의 1회를 사(祀)라 한다.
1사에는 13기(期)가 있고, 1기는 4요(曜)가 있고, 1요에는 7일이 있어, 1사는 52요복(13기X4요)이 있으니 합이 364일이다. 여기서 1사(년)의 시작에 단이 있으니 시작에 1을 합하여 365일이 된다.
또한 여기서 4번째 사에 다시 1을 보태니 366일이 된다.

오늘날 식으로 말하면 1년은 13달이 있고 1달에는 4주가 있고 1주일은 7일(그러니까 1달은 28일)이고 1월달은 하루가 더 있어 29일이 있다. 그래서 1년은 365일이 되고 4년에 한번 윤년이 오면 366일이 된다.

오늘날 일부 사람들은 1년이 13개월이 너무나 과학적인 방식이므로 2000년부터는 이 방식을 취하자 하며 주장을 하는 것으로 봤을 때 우리 조상님들은 너무나 과학적인 달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제 6 장 : 잃어버린 부도의 법

第二十五章

이로부터, 천산(天山) 남쪽 태원(太原)의 지역이, 뒤숭숭하고 떠들썩하며, 주인이 없는 것과 같아서, 소위 왕이란 자는 눈이 멀고, 소위 장님은 백성이 되어, 암흑이 중첩하였다. 강자는 위에 있고, 약자는 아래에 있어, 왕과 제후를 나라에 봉하고, 생민(生民)을 제압하는 풍폐(風幣)가 만연하여 고질이 되고 마침내 서로 침탈하기에 이르니, 헛되게 생령(生靈)을 죽이고, 한가지도 세상에 이로운 것이 없었다. 그러한 까닭으로, 하은(夏殷)이, 다 그 법으로 망하고서도, 끝내 그 까닭을 알지 못하니, 이는 스스로 부도에서 떨어져 나가, 진리의 도를 들을 수 없게 된 까닭이었다. 어느덧 유호씨가 그 무리를 이끌고, 월식성생(月息星生)의 땅에 들어가니, 즉 백소씨(白巢氏)와 흑소씨(黑巢氏)의 후예가, 오히려 소(巢)를 만드는 풍속을 잊지 아니하고, 고탑(高塔)과 층대(層臺)를 많이 만들었다. 그러나 천부(天符)의 본음(本音)을 잊어버리고, 탑을 만드는 이유를 깨닫지 못하여, 도를 와전하여, 이도(異道)가 되고, 서로 시기하고 의심하여, 싸우고 정벌하는 것으로 일을 삼았다. 마고(麻姑)의 일은 거의가 기괴하게 되어, 허망하게도, 형적이 아주 없어지니, 유호씨가 두루 제족의 지역을 돌고, 마고와 천부의 이(理)를 설(說) 하였으나, 모두가 의아하게 여기고, 받아들이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오직 그 전고자(典古者)가 송구스럽게 일어나서 맞이하였으므로, 이에 유호씨가 본리(本理)를 술회하여, 그것을 전하였다.

第二十六章

임검씨가 유호씨의 행상(行狀)을 듣고, 그 길을 장하게 여겨, 유호씨의 족(族)에게 교부(敎部)에 취업하게 하여 살도록 하였다. 이때에, 임검씨가 하토(夏土)의 형세를 심히 걱정을 하고, 마침내 입산(入山)하여, 해혹복본(解惑復本)의 도를 전수(專修)하였다. 임검씨의 아들 부루씨(夫婁氏)가 천부삼인을 이어받아, 천지가 하나의 이치가 되는 것을 증명하여, 인생이 일족(一族)이 되어, 크게 부조(父祖)의 도를 일으키고, 널리 <천웅(天雄)의 법을 행하여, 인세 증리(證理)의 일에 전념하였다. 일찍이 <운해족(雲海族)과 긴밀하게 연락하여, 하토(夏土)가 하나로 돌아오기를 시도하더니, 이도(異道)가 점차 성하여, 마침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부루씨(夫婁氏)가 천부를 아들 읍루씨(?婁氏)에게 전하고 입산하였다. 읍루씨가 날 때부터, 대비(大悲)의 원(願)이 있어, 천부삼인을 이어받고, 하족(夏族)이 도탄에 빠진 것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진리가 사단(詐端)의 지역에 떨어진 것을 슬프게 생각하여 마침내, 명지(明地)의 단에 천부를 봉쇄하고, 곧 입산하여, 복본의 대원(大願)을 전수(專修)하며, 백년 동안 나오지 아니하니, 유중(遺衆)이 통곡하였다.
임검씨가 후천(後天)의 말세의 초에 태여나, 사해의 장래를 미리 살피고, 부도 건설을 시범하니, 천년 사이에 그 공업이 크게 이루어졌다. 이에 이르러 천부의 전해짐이 끊어져, 마고 분거(分居) 이래로, 황궁(黃穹), 유인(有因), 환인(桓因), 환웅(桓雄), 임검(壬儉), 부루(夫婁), 읍루(?婁)의 7세에 천부가 전해진 것이 7천년이었다.

제 10 부 : 잃어버린 부도의 법

상고사에 있는 우리 고대국가를 보면 큰 의문점이 하나가 있다.
한단고기나 기타 다른 상고사에 관련된 서적을 보면 우리민족의 영토가 너무나 거대했다.
그 영토를 어떻게 관리를 했을까?

조선시대 인구 조사를 한 것을 보면 1억8천만의 인구가 있다 했다.
이것으로 봤을 때 당시의 영토는 지금의 유라시아 대륙의 상당부분을 차지를 했을 것이다.
특히 당시에는 통신기기나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못했기에 지방에서 어떤 일이 일어 났는지 중앙에 어떤 일이 있는지 알기가 힘이 들었을 것이다.
만약 지방에 어떤 세력을 지닌 지방 호족이 나쁜 마음을 먹고 은밀히 세력을 모은다면 중앙에서는 알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의 예를 봐도 국가의 크기가 어느 정도 이상 커지면 관리의 어려움으로 통제력에 한계를 느끼게 된다. 중국 같은 경우를 봐도 역사가 200년 이상 되는 나라가 없다.
앗시리아제국, 사라센제국, 원나라 같은 경우도 그렇다.

로마 같은 경우는 교통망을 엄청 강화시켜(모든 길은 로마로라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 그들은 교통망에 엄청난 에너지를 쏳았다.)그래도 그나마 오래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 고대 국가는 그러한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국가가 유지를 할 수 있었을까?
당시 환국은 3301년, 배달국은 1565년, 조선은 2096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그것은 잉카제국의 국가 형태를 보면 답을 알 수가 있다.
잉카제국도 우리와 같은 우리와 같은 공산주의 체제 였다.
그들은 강력한 종교의 힘으로 국민을 묶어 일을 하지 않음은 죄악 이였기에 특별한 통제 수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유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앞서 우리 고대국가가 공산주의 사회라는 말을 했었다.
우리는 환인, 환웅, 단군을 한얼님이란 말로 자주 불렀다.
이것은 큰 얼을 가진 님이란 뜻이니 이들이 우리민족의 정신적인 구심점이 되었다는 말이다.
부도의 법으로 모두가 하나가 되었기에, 천손족의 문화로써 정신적으로 모두가 한 울타리안에 있었기에 국가가 유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마고성의 시대는 본성만을 가지고 있었던 시대이다. 그렇기에 그때는 우리 모두가 신성을 가지고 있었던 시기였다. 그러나 오미의 화로 욕망이 생기고 관념이 생겨 본성에 막이 생겨 신성을 잃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마고성에서 나오게 되었고 12명의 천인(天人)에 의해 민족은 여럿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황궁씨(黃穹氏)에 의해 그 법이 잘 지켜져 주변의 다른 나라의 정신 지도국으로 그 자리 매김을 할 수 있었다.
다시 오행의 화가 있고 이에 의해 지나족은 혼란한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결국 이들은 안정된 조선으로 흘러 들어 오게 되고 이들에 의해 이민족의 저급한 문화에 의해 문화 침투를 당하게 되어 우리가 오히려 오행의 화를 입게 된다.

이 오행의 화에 의해 지배욕이 생기게 되고, 투쟁심이 생겨 민족을 이루고 있는 정신적 고리가 끊어지며 통제력을 상실하게 되어 결국 부도의 법을 잃어 버리고 국가가 분열하게 된다.

고열가 단군 때에는 더 이상 통제를 하기 어려운 법이 통하지 않는 시대까지 가서 결국 법을 안고 폐관을 하게 된다.


제 7 장 : 삼한에서 삼국으로

小 符 都 誌

第二十七章


은(殷)의 망명자 기자(箕子)가, 패군과 난민을 이끌고, 부도의 서쪽에 도망하여 왔다. 명예를 위하여 당우의 법을 행하고, 오행 삼정(五行三正)을 써서, 홍범 무함(洪範巫咸)을 시행하였다. 천웅의 도와는 절대로 서로 용납할 수 없었다. 은의 군민(軍民)이 무력으로 부도의 유중(遺衆)을 억압하므로, 유중이 마침내 명지(明地)의 단(壇)을 봉해버리고, 동해의 물가로 피하여 살았다. 즉 옛날의 사례벌(斯禮筏)의 공지(空地)였다. 사해벌은 긴 기(長旗)니, 광야(曠野)에 유배된 사람이, 아침에 내걸고, 저녁에 거둬들여, 먼곳에서 살면서 지키는 사람으로 하여금, 도망가지 않았음을 알게 하는 것이었다. 곧 육촌(六村)을 설치하고, 입접의 제족과 분담하여, 함께 지키되, 각각 한(韓)이라 하고, 보위(保衛)하였다. 한은 보위의 뜻이다.
북의 마한(馬韓)과, 남의 변한(卞韓)과, 동의 진한(辰韓)의 삼한이 부족의 자치를 행하고, 선세(先世)의 도를 굳게 지켜, 이후 천년 사이에 기자의 법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보위 방비하는 일에 전념하여, 거의 여력이 없었다. 이 때 하토(夏土)의 쟁탈의 바람이 점차 격심하여, 동요와 혼란이 삼한에 파급되므로, 육촌의 사람들이 서로 모의하고, 서쪽의 화가 점차 임박하여, 보수(保守)하기가 장차 위태로우니, 어쩔 수 없이 통합 방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고, 마침내 경계를 정하고, 요새(要塞)를 세워, 혁거세를 추대하여, 통어(統御)하는 일을 위임하였다. 남은 백제(百濟)요, 북은 고구려(高句麗)였다. 고구려가 곧 북보(北堡)의 땅을 회복하여, 서침(西侵)하는 사람들을 쫓아버리고, 그 지역을 완전하게 보위하였다.

제 11 부 : 열국시대로

앞에서 얘기를 한 것처럼 오행의 화에 의해 혼란진 중국의 여러 국가(夏, 殷)의 유민이 삼한으로 흘러 들어옴으로써 삼한의 백성들이 꺼꾸로 문화 침투를 당하여 부도의 법이 끊어지고 의식의 고리에 틈이 생겨 국가의 통제력의 한계를 맞게 된다.
특히 44세 단군 때부터는 삼한은 통치는 받으나 군사권은 각각 나눠 가졌으며, 47세 고열가 단군의 폐관 이후는 실질적인 법통을 잃어 삼한이 여럿으로 분열이 되니 그 여러 제후국 중 가장 강한 나라에서 단군이 나왔다.

이 때문에 실질적인 법통을 가진 진한의 후예가 이러한 약육강식(弱肉强食)의 권력 쟁탈전에 회의를 느껴 이 들의 세력이 닿지 않는 구석진 자리에 가서 나라를 세우니 이가 신라가 되었다.
그리고 삼한의 여러 나라 중 고구려와 백제가 있어 다른 여러 나라를 병합 하여 커지니 후세 사람들이 삼국시대라고 부르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이렇게 생성 되었다.
제 8 장 : 잃어버린 역사
제 12 부 : 한사군의 허구

70년대 중반 재야 사학자 임승국은 한사군의 명칭이 사마천의 ‘사기(史記)’ 115권 조선열전(朝鮮列傳)은 물론 그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지극히 단순한 이사실 하나를 발견하는데 2000년이 걸렸다면 과연 믿겨질 만한 일인가?
한말 친일어용 사학 단체인 청구학회의 공동 대표 였으며 해방 후 반세기 동안 남한 사학계의 태두였던 이병도는 사기(6권)에 한사군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이야기를 했으나 임승국에 의하면 사기 그 어느 곳에도 그러한 기록이 없다.
일연스님조차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김부식의 삼국사기(三國史記)가 한사군을 논한 것을 보고 군의 수도 명칭도 틀리다 하였으나 어찌 2000년 동안 한번의 의문도 없이 이를 받아드렸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또한 한무제가 보낸 수군제독 양복은 열수를 거슬려 올라가다 조선 수군의 습격을 받아 패전하여 배는 가라앉아 버렸고 상륙하여 도망다니는 치욕을 치렀다. 또한 그는 전쟁이 끝난 뒤에는 한무제에 의하여 사형이라는 극형을 당하고, 사체는 찢겨 사대문에 걸리는 기시(棄市)에 처해 졌던 것이다. 육군 사령관 순체(筍?)도 같은 기시를 당했다. 이 전쟁의 주역이였던 양군의 사령관이 모두 기시에 처해 졌다는 것은 이들이 승전의 주역이 아니라 패전의 주역 이였다는 말 일 것이다.
만약 이들이 승전고를 울렸다면 이들은 승전의 영웅이지 결코 이렇게 죄를 물어 처형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찌 패전한 나라가 한사군을 설치를 할 수 있었겠는가?

실지 위만조선으로 알려진 우거 정권이 구테타로 무너진 뒤 그곳에 설치된 사군은 한나라사람이 다스리는 사군이 아니라 조선사람 참최음협이라는 네 사람이 다스리는 평주홰청추저날양이라는 4군이였다.
사기에서는 조선이 평정되어 4군이 되었다고 하며 평주홰청추저날양이라는 4군을 소개 했고, 이 사군의 행정 통치 책임자들을 조선족인 최음참협이라는 네 사람이라 했다. 또 그 4군의 위치를 발해 연안에서 산동반도까지라 했다.

그러면 우리 역사의 기록에서 흔적을 보면 낙랑국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곳에서 나온다.
많은 사학자들이 낙랑군과 낙랑국을 같은 존재로 봤으나 이들 둘은 서로 다른 존재이다..

삼국사기에서의 낙랑국에 대한 이야기는 저유명한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에 대한 이야기로 우리에게 잘 알려 져 있다. 이 이야기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大武神王) 15년(서기 32년)때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에서 보면 낙랑왕 최리(崔理)가 낙랑군의 태수가 아니라 왕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낙랑이 멸망을 한 시기가 강단사학자의 말을 빌리면 미천왕 14년(서기 313년)에 고구려에 의해 멸망을 하였다 하니 대무신왕(大武神王) 15년(서기 32년)에 멸망을 한 낙랑과는 분명 다른 것이다.

또한 <삼국사기> 신라본기 기림이사금(基臨尼師今) 3년조의 “3월에 우두주(牛頭州)에 이르러 태백산에 망제(望祭)를 지냈다. 낙랑과 대방 양국(兩國)이 귀복하였다”는 기사 역시 낙랑군이 아니라 낙랑국으로 이야기가 되었고, <삼국사기> 남해차차웅(南解次次雄)조에도 ‘낙랑은 신라와 이웃나라이다’라 했다.

이 낙랑국의 위치는 앞서 고구려본기에서는 고구려의 남쪽이라 했고 남해차차웅조에서는 신라와 이웃나라라 했으니 고구려와 신라 사이에 있는 작은 국가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

이렇게 여러 자료에서 보듯 낙랑군은 그 이름만이 보이지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유령국가 이다.


제 9 장 : 어둠속으로

第二十八章


이보다 먼저, 육부(六部)의 촌장(村長)들이 약(藥)을 캐는 날에 모여서, 선도산 단묘(仙桃山壇廟)의 성모(聖母)가 알을 낳다는 말을 듣고, 여러 사람이 가서 보았다. 동쪽의 우물을 보로 덮어 가리고, 껍질을 벗겨서, 남아를 얻었다. 몸에서는 빛이 나고, 귀가 부채만큼 컸다. 곧 박(朴)으로써 성을 삼고,이름을 혁거세(赫居世)라 하였다. 박은 단의 어음이 박달이기 때문에, 그것을 취하여 성을 삼았으며, 혁(赫)은 빛이니, 즉 광명으로써 암흑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구원한다는 뜻이다.
육촌의 사람들이 함께 양육하니, 점차 자라면서, 신기(神氣)가 수명(秀明)하고, 대인(大人)의 도가 있었다. 13살에 여러 사람이 추거(推擧)하여, 거서간(居西干)이 되니, 거(居)는 거(据)요, 간(干)은 방(防)이요, 장(長)이다. 즉 서방에 의거하여, 경계하는 방어장(防禦長)의 뜻이다. 서방은 즉 저들 서침하여 사도(詐道)를 행하는 자들이다.

第二十九章

혁거세씨는, 천성(天性)은 신과 같고, 지혜는 성인과도 같았다. 또 현비(賢妃) 알영(閼英)을 맞이하니, 그 때 사람들이 그들을 가르켜 이성(二聖)이라 하였다. 능히 여러 부족을 통솔하여, 선세(先世)의 도를 행하며, 제시(祭市)의 법을 부흥하고, 남태백산(南太白山)에 천부소도(天符小都)를 건설하였다. 중대(中臺)에 천부단을 축조하고, 동서남북의 사 대에 보단(堡壇)을 설치하여, 계불(??)의 의식(儀式)을 행하고, 대인(大人)으로 하여금, 금척(金尺)의 이치에 따라, 천지시원의 근본을 증리(證理)하여, 옥관(玉管)의 음을 내서, 율여화생법(律呂化生法)을 수증(修證)하였다. 해마다 10월에 백의제(白衣祭)를 행하였으니, 이는 황궁(黃穹)씨의 속신백모지의(束身白茅之義)를 따르는 것이었다. 달구(達丘)에 조시(朝市)를 배풀고, 율포(栗浦)에 해시(海市)를 열어, 육해 교역의 제도를 수립하였다. 항상 순행(巡行)하여, 농상(農桑)과 방적(紡績)을 권장하니, 들에는 노적(露積)이 쌓이고, 집에는 베(布)가 저장되어 있었다. 이와 같이 착한 일을 크게 일으켜, 여러 사람과 함께 그 고락(苦樂)을 같이 하고, 밖으로 방패와 창을 쓰지 아니하며, 이웃과 더불어 평화를 보존하였다. 한 마음으로 복고(復古)하고, 중건(重建)하는 일에 전념하니, 경내가 도가 있어, 옛날과 흡하사였다. 이 때에 변진(弁辰) 제족이 합동하여 협력하니, 비록 경계를 두고 방비하나, 나라를 칭하지 아니하고, 또 왕을 칭하지 아니하였다. 경내를 다스리는 일은 선세(先世)의 법을 준수하여, 제회(祭會)에서 의결되지 아니하면, 일찍이 한가지의 일도 행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영수계위법(領首繼位法)이, 역시 혈계(血系)를 한정할 필요가 없었으며, 현명한 사람을 택하여 영수를 삼았다.

第三十章

남아 나이 20살이 된, 아름답고 말을 잘하는 사람을 택하여 마랑(馬郞)이라는 직을 주고, 명령을 받들어 원행(遠行)하게 하였다. 혹 성생월식의 옛 땅에 나아가며, 혹 운해천산의 여러 지역에 가니, 이 원행은 부도 수신(修身)의 유제(遺制) 였다. 동해에 피하여 산 지 천여년사이에 제시의 회(祭市之會)를 열지 못하여, 서로 내왕이 오래 끊어지고, 또 봉국쟁탈(封國爭奪)의 풍조가 사해에 만연하여, 제족이 각자 나라를 칭하고, 오랜 세월에 전란이 반복하니, 겨레(族)가 종횡으로 나뉘고, 말이 잡다하게 변하였다. 천부는 거의 망각하기에 이르고, 혹 그것을 아는 사람이 있어도, 다 변형(變形)하여, 음이 다르니, 마랑들의 원행이 심히 어려워, 순절(殉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마랑들이 만리 원행에서도 절조를 지켜, 능히 굳은 뜻을 가지고, 백난을 극복하여 사명을 완수하니, 그 거룩한 인격이 진실로 호매(豪邁)하였다. 장하게도 귀환하면, 반드시 직사(職事)에 임명하여, 천문(天文)과 지리(地理)와 역수(曆數)와 박물(博物)을 공부하게 하니, 이는 즉 선세에 사해를 통화하여, 인세(人世)를 하나의 법에 맞추는 유업이었다.

第三十一章

서례벌(西禮筏)을 창도(創都) 한 후로, 어느덧 삼세(三世)를 지나니, 백여년이 되었다. 세상의 풍조가 크게 변하여 보수하기가 어려워졌다. 이에 국왕(國王)을 세워, 대권을 행사 하게 하자는 여론이 대두하여, 이러니 저러니 하고 시끄러웠다. 그 반대자들은 선세의 유법이 밝고 밝게 천부를 비추니, 지금 비록 시대가 어려우나, 보수하고 튼튼히 방비하여, 그 때를 기다리는 것이 옳다. 어찌 사단(詐端)에 굴종하여 스스로 소자(小子)가 되어, 패리지중(悖理之中)에서, 모독을 당하는 것을 참을 수가 있겠는가. 차라리 이와 같이 된다면, 의롭게 목숨을 바쳐, 진도(眞道)를 뚜렷하게 나타내어, 후세에 남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하였다. 그 찬성하는 사람들은, 외세가 긴박하여 파동이 격심하니, 어떻게 방비를 하겠는가. 담장 안에서도 이반하여 시끄러움이 그치지 아니하는데, 어떻게 보수한단 말인가. 일이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으므로 같이 경쟁하는 마당에 뛰어들어, 부강하게 된 후에, 유업을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지금 사해 제족이 사도에 미쳐 날뛰어, 봉사가 된 지 오래 되었다. 우리가 지금 자멸하여 버리면 누가 진도를 현창하며, 후세에 누가 있어, 이를 알 것인가. 만약 능히 방비하여, 보수한다 하더라도, 오랫동안 고립되면, 새 백마리 가운데 백로 한 마리가 되어, 오히려 이도(異道)가 되고 세상에 존립할 수가 없게 될 것이니, 장차 또 그를 어찌한단 말인가. 이 같은 것은 다 옳지 못하여, 오직 택할 바는, 나라를 세우고 왕을 높여, 대권(大權)을 집행하며, 군마를 호령하여, 파죽지세로 전진하고, 부도 전역을 회복하는 것 뿐이다. 부도를 다시 세워, 그 근본을 명시하면, 제족이 비록 완강하더라도, 반드시 각성하여, 근본으로 돌아올 것이다.

第三十二章

이에, 마침내 중론(衆論)이 결정되었으므로 인망(人望)이 왕국 수립을 주장하는 석(昔)씨에로 돌아 왔다. 석씨는 동보(東堡) 유배인의 후예로, 옛날부터, 해빈(海濱)에서 살아오던 사람이었다. 체격이 장대하고 지략이 있었으므로, 남해씨(南海氏)가 딸을 주어 아내가 되게 하였다. 이에 이르러, 대중의 여망에 따라, 자리를 이어 탈해왕(脫解王)이라 칭하니, 즉 보수(保守)의 질고에서 벗어난다는 뜻이었다. 또 서라국(徐羅國)이라 칭하고, 비로소 방패와 창을 사용하여 경내(境內)를 평정하였다. 용병(用兵)을 과도하게 하여, 필경은 배척당하였다. 중론이 다시 박씨의 보수계로 돌아오니, 이에 박씨가 다시 계승하고, 왕국의 칭호를 폐지하였다. 4세를 지나, 중론이 또 석씨에게로 돌아 갔으나, 단 정벌하는 일을 원하지 않으니, 이가 벌휴씨(伐休氏)였다. 석씨 4세 사이에 정벌을 다시 시작하니, 중론이 김씨의 중화(中和)로 돌아왔다. 김씨는 원래 부도에서 동쪽으로 옮겨와 살던 비족으로, 온양덕후(溫讓德厚)하여, 지마씨(祗摩氏)가 손녀를 주어 아내가 되게 하였다. 이에 이르러 자리를 이으니, 이가 미추씨(味雛氏) 였다. 이 때를 당하여 서북의 환(患)이 계속해서 일어나되, 하나도 조치된 바가 없으므로, 중론이 다시 석씨에게로 복귀하였다. 이에 석씨가 다시 자리를 이어, 3세 사이에 정사(征事)가 허다하여, 민물(民物)을 탕진하므로, 크게 시대의 배척을 받았다. 중론이 다시 김씨에게로 돌아가니, 이에 김씨가 다시 이어 오늘에 이르렀다.

第三十三章

오직 우리, 근본을 지키는 족들이 동해에 피하여 살면서, 방비하고, 보수한 지 삼백여년 사이에, 중론의 번복이 이와 같으니, 가히 역외(域外) 풍운이 어떠함을 살필 수가 있을 것이다. 또 가히 천부의 진리가 사단의 세상에서도 의연하게 살아 있음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세세 중론이 반드시 이 도가 무너지지 않는 것에 근거하여, 역대 영수가 오히려 중론의 소재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과격하지도 느슨하지도 않게 능히 조절하여, 보수를 크게 전하였으니, 마침내 오늘의 사람들로 하여금 가히 천부의 실재를 알게 하며, 또 장차 후인으로 하여금 때를 만나 그것을 행하게 하여, 능히 부도를 다시 건설하고, 사해를 통화하며, 인세가 복본하여, 진리를 명증(明證)하게 하면, 당시 석씨의 논이 과연 불행 중에서 행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題詩
[아지랑이 초초(??)하게
흐르는 걸 바라보니,
나그네의 마음도
가을처럼 지는구나.
세간(世間)의 견백(堅白)도
유유(悠悠)한 일도
징강(澄江)을 대하고 앉아
근심을 잊는다.]
觀雪堂
음신지, 역시지, 천웅지, 성신지 계속 출간중. 편찬자 백영해 박씨 대종회


제 13 부 : 어둠속으로

조선의 정통성을 이은 진한(眞韓)의 후예가 서라벌로 옮겨오면서 박혁거세를 거서간(居西干)으로 삼는다.
혁거세씨는 부도의 법에 맞춰 제시(祭市)의 법을 부흥하고, 금척(金尺)의 이치에 따라 나라를 다스렸다.

그러나 오행의 화가 그 주변에 미쳐 세상의 풍조가 크게 어지러워 지자 신라의 재계층 역시 따라 흔들려 여러가지로 의견이 분분하였다..
결국 박(朴),석(昔),김(金)씨로 번갈아 가면서 왕권이 바뀌어 본래의 뜻(부도의 법을 수호)과는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고구려와 백제의 시달림에 지친 신라가 당과 연합을 하면서 많은 유학자나 심지어는 왕족 조차 당나라에 유학을 갔다 오면서 부도의 법을 잊어 버리고 문화 침투를 당해 오행의 화에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병합하면서 정통은 수호 하였으나 이미 이들은 오행의 화에 노출이 되어 있었기에 결론적으로 민족의 정기에 큰 손상을 가져 온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영향을 받아 김부식과 같은 사대주의 학자는 그 뿌리를 잊어버리고 모화사상에 쌓여 우리의 역사를 왜곡을 시켜 후세 사람들이 제 역사를 알고자 해도 알 수가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출처: 마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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